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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즈나 Aug 22. 2024

냄새나는 여자

향수를 쓰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익숙하지 않아서이다.

엄마는 향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어서 인위적인 향기가 나면 재채기를 하곤 했다.

싸구려 향수에 가장 큰 반응을 보였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을 때 주변사람들에게서 나는 향수냄새에도 곧잘 반응을 하곤 하셨다.

그래서인지 무의식 중에 향수란게 나쁜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예쁜 모양의 향수 미니어처를 모으는 친구 따라 몇 개 모아 보기도 했는데 썩 와닿지 않던 취미였다.


세월이 지나고 나에게도 시그니쳐 같은 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만 나에게 맞는 향이 뭔지도 모르겠고 가격을 보면 어쩐지 사치 같아서 그냥 그렇게 넘어가곤 했다.

몸에서 나는 향은 샴푸향과 바디워시향 (이것만큼은 그래서 있는 힘껏 취향을 쏟는 편) 정도였다.


그 사람은 향수를 좋아했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향수 고르는 거에 시간을 들이는 편이라는 걸 들었을 때 무취의 내가 어쩐지 머쓱해져서 영화 '도둑들'에 나오는 예니콜 대사를 한마디 쳤다.

난 타고난 살냄새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그는 내 체취를 좋아했다. 내 샴푸향을 좋아했고 바디워시의 잔향이 섞인 내 살냄새를 좋아했다.


나도 그의 향이 좋았다. 손을 잡으면 손목에서 나는 향수의 향이 좋았고 안았을 때 목덜미에서 나는 향수의 향이 좋았다.

매일 달라지지만 항상 잘 어울리는 그 향이 좋아서 오늘은 무슨 향수냐고  자주 물어보곤 했다.


때때로 더운 날씨에 땀냄새도 날 때도 있었는데

정말. 요즘같이 덥고 습한 날씨에 때때로 풍기는 낯선 이들의 땀냄새는 저 멀리 도망갈 정도로 싫어했는데

이 무슨 찐사랑인지-. 그것마저도 좋았던 그 사람의 체취.


그립다.

나의 냄새를 좋아하던 너의 냄새가.



화장을 지울 때 셔츠를 벗을 때 코끝을 지나는 그대만의 냄새

예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 밋밋한 얼굴의 그대만의 냄새

좋다 하기엔 넌 너무 짜릿해 보고 싶지 않다가도 매일 나는 느끼네

우 나도 몰래 너를 안은 채로 풀썩 쓰러지게 돼

- 10cm '냄새나는 여자'



누군가에게 향기로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나와 어울리는 향을 다시금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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