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별은 다 아프지만
유독 아프고 매운 게 '예상치 못한' 이별인 것 같다.
극악하게 싸워대서, 혹은 너무나 오랜 침묵이라던가
원인이 있다면
그에 의한 결과를 미세하게나마 예상할 수 있지만
나만 대가리 꽃밭이었던 건지
행복함은 나 홀로 느꼈던 건가
예고편 하나 없이 본편으로 들이받아버리는
그런 개차반 같은 이별.
예를 들면 잠수 같은 거.
사회생활을 할 때 만나게 된 남자친구는
나이가 나보다 좀 어린 졸업반 대학생이었다.
음악 듣는 취향이 비슷해서 좋아했고,
웃는 모습이 좋았고,
미래를 그리는 모습이 멋져서 좋아했다.
그 미래 속에 내가 함께 있었으면 했다.
취업시즌이 되어서 여기저기 원서 넣고 하더니
원하는 회사에 서류전형에 합격했다고
다음 과정을 준비해야 한다고
연락이 조금 소홀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 너의 미래는 내가 응원해야지.
열심히 하라고 수능 앞둔 사람처럼 이것저것 챙겨줬고
혹시라도 방해될까 싶어 연락하고 싶은 것도
꾹꾹 참고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험 보고 나왔고 잘 본지는 모르겠으며
밥 먹고 연락하겠다는 그런 카톡만 보내고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
원래도 가족들이랑 시간 보낼 때는
연락이 늦어지는 편이라 그러려니 했다.
하루, 이틀.. 화가 났고
며칠이 지나니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한거라고 자책을 했다
몇 주가 지나니 사실 이별이지만 내가 안 믿으려고 하는
인지부조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때 정말 많이 힘들어했다.
매일 희망과 자책이 공존하였고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마다
나라 잃은 사람처럼 흉한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종교도 없는데 무릎 꿇고 기도를 하기도 했고
매일 카톡을 하면 스토커 같지 않을까,
그렇다고 안하면 잊은줄 착각하는거 아닐까,
집이 어딘지 정확히 모르겠는 게 억울했다.
그 사람 집 근처 역에서 서성이면 만날 수 있을까.
내 전화를 받지 않으니
공중전화나 회사전화로 전화하면 받을까.
차마 그러지도 못했다.
남의 전화로 전화받으면 정말 이별이 사실화되는 거니까.
매일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이별이 확실해지는 날인건지
아니면 다시 만나는 날이 다가오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낭비하듯 소비했다
그러다 문득, 계절이 한번 바뀌었고
여전히 힘들어했고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버텼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쯤 되어서
그 사람이랑 크리스마스때 하려고 했던 것들을 얘기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누구에게라도 특별한 이 하루를 위해 나는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메모장에 긴 편지를 적기 시작했다.
너는 어쩌면 '이제 그만 만나요'란 말을 하지도 못하는 비겁한 사람이라고.
나는 로또 1등 복권 같은 사람이고 더 행복해지고 멋져질 거라고.
너는 너대로 잘 살라고 (사실 못살길 바랐는데 쿨한 척했다)
며칠을 다듬어가면서 세상 쿨한 척 내가 더 잘 지낼 거지만 못난 너도 잘 지내보렴. 이란 내용으로 긴 카톡을 써서
그 사람의 카톡에 붙여 넣기하고
아예 삭제해 버렸다.
읽던 안 읽던 나는 상관하지 않을 거고
더 이상 너에게 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거라는 결심도 함께 하면서.
그렇게 나를 지옥으로 몰아가던 연애를 홀로 (또) 마무리 지었다.
시간은 약이라고 한참의 한참의 한참이 지나니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은 옅어지고 사라져 가지만
힘들었던 그 감정이 찌꺼기처럼 남았는지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애달픈 기분이 든다.
이 정도로 예측불가능한 이별은 후유증이 센가 보다.
웃어줄 수 없어 편해질 수 없어
그대도 잘 있지 말아요
한 땐 숲이었던 이 내 맘을 사막으로 만든
행복하게 됐든 불행하게 됐든
그대는 날 잊지 말아요
찬 바람이 불면 같이 떨어요
- 가을방학 '잘 있지 말아요
'누나, 이쁜 이별이 어딨어. 이별은 다 못생겼어!'
친한 동생이 사랑에 아파하는 나에게 해주던 말이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지만 건강한 이별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아무리 어색해도 굳이 만나고 얼굴을 마주하고서
감정을 정리하고 못다 한 이야기도 하는 과정을 거친 이별이 제일 건강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진짜 치사하게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지고 그러지 맙시다.
남은 사람은 지옥을 경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