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목流木
파도가 심했던 다음 날에는 해변으로 간다. 해변에는 바다의 부산물이 널려있다. 어떤 날은 쓰레기 하치장처럼 변해 있다가도 어떤 날은 아름다운 것들이 실려와 넋을 잃고 흐드러졌다. 주로 노리는 것은 소금물을 잔뜩 머금은 오래된 나무와 닳아서 동그래진 색색깔의 유리파편. 파도와 바위에 쓸린 뿔고동의 하얀 조각들. 소금물을 머금은 나무들은 잘 말리면 썩지도 않고 뒤틀리지도 않는다. 팔만대장경을 만들 것도 아닌데 쉬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소히 마음이 쓰인다. 국경 없는 바다 어딘가로 일렁이다 겨우 당도했을 출처를 잃은 나무들. 부랑자의 몰골로 뻘에 처박혀 있거나 소금물이 채 걷히지 않아 끙끙 거리며 옮겨야 할 만큼 무겁고 사납다. 그것들을 가는 비에 씻기고 몇 날을 바람 부는 그늘에 말린다. 수분기가 사라지고 유랑한 시간만큼 바랜 빛깔이 돌아오면 하나둘 쓰임을 가지고 떠난다. 테이블이 되기도 하고 그릇장이 되기도 한다. 소품을 올려두는 도마도 그럴싸하다. 이런 유목들로 수조를 꾸미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인공적으로 무언가를 기르는 일에는 소질이 없어 저만치 물러난다. 염분을 머금은 나무에서는 짜고 거친 냄새가 난다. 유랑자의 울분 같기도, 정착지에 안착한 회한 같기도 하다. 결, 색깔, 모양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2. 무아無我
가끔은 어린 동물의 시체나 죽어가는 물고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경계가 희미한, 뭍과 수면의 어디쯤. 온통 일렁이는 것이 바다인지 파도인지 하늘인지 혹은 나인지 알 수 없어 스스로를 상실하는 어떤 순간이다. 상실과 충만의 모호한 수평선이 아름답다. 누군가는 잃었으나 누군가는 가졌고 그 누군가를 규정할 수 없을 때 언어는 본질을 잃고 바다 깊이 침수한다. 무아의 상태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다. 아무것도 아닐 때 가장 결과에 가깝다.
3. 해명海鳴
일련의 산책이 끝나고 나면 끊임없이 표류하고 있는 것은 결국 ‘나’라는 생각이 든다. 멀리 천둥같은 해명이 울려 퍼지고 가슴께가 뻐근해온다. 온종일 파도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4. 물고기자리
젤리 같은 유리 파편을 유리병에 담아둔다. 뭍에서 숨 쉬는 시간이 버겁다 느껴질 때 하나씩 꺼내먹을 요량으로. 물고기자리에게 아가미가 없는 것은 가혹한 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