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하나, 나를 펼치는 지도

흩어진 마음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시간

by 바다기린

한때는 주간 계획표가 늘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빠르게 판단하고, 정리하고, 실행하는 데 익숙했다. 그런데 결혼과 육아, 경력 단절, 하루하루의 반복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게 느려졌다. 뭘 하고 싶은지도,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알 수 없던 시기였다. 그때 우연히 만난 책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생각하기』. 책장을 넘기다 만난 손그림들, 중심 이미지에서 생각의 흐름이 선으로 연결된 모습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끌렸다. ‘이걸 나도 해볼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펜을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를 위한 생각의 지도를 그려봤다. 시작은 단 하나의 단어였다. ‘나’. 중심에 그 단어를 적고, 하고 싶은 일들, 떠오르는 감정들, 망설임의 이유들, 아주 작지만 나를 설레게 하는 순간들을 선처럼 뻗어나갔다.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생각은 선명해졌고,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졌다. 말로는 도무지 풀리지 않던 감정들이 손끝을 따라 흘러나오는 기분이었다. 그 한 장의 그림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다시 앞으로 걸어가게 해주는 작은 나침반이 되었다.


그날 이후 이 방식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여행 계획을 짤 때, 수업을 기획할 때, 글을 쓰기 전 머릿속이 복잡할 때마다 나는 펜을 들고 종이 위에 중심 단어를 적는다. ‘생각을 정리한다’기보다, ‘흩어진 마음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꼭 예쁘게 그릴 필요도 없다. 가지를 뻗다 보면 마음속에 쌓인 문장들이 슬며시 따라 나온다. 마치 실타래를 푸는 것처럼, 처음엔 엉켜 있던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흐름을 타고 나아간다.


이런 경험을 나누고 싶어 2015년에는 마인드맵 지도사 자격도 취득했다. 아이들과의 역사 수업이나 독서, 글쓰기 수업에서 자주 활용했고, 이 방식은 아이들의 눈을 반짝이게 했다. 글을 못 쓰겠다던 아이들도 중심 단어 하나만 정해주면 금세 종이를 가득 채웠다. 꼭 중심에서만 출발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누군가는 가장 바깥쪽에서 이야기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선 대신 색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그렇게 나누는 순간,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었다.



지금도 나는 마음이 복잡한 날이면 중심 단어 하나를 꺼낸다. 두려움, 설렘, 멈춤, 기대, 미안함… 감정 하나에서 출발해 선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조용해진다. 눈으로 보면서 그릴 수 있다는 것.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지금의 나는 다시 엉켜버린 나를 풀어내고 싶을 때, 말보다 먼저 펜을 든다. 선이 말을 대신해 흐를 때, 마음은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 마음을 펼치는 지도 –

글로도, 말로도 닿지 않을 때

조용히 선을 그어본다.

중심에서 멀어지며,

마음은 오히려 안쪽을 향한다.

가장 나다운 길은

어쩌면 그렇게 그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천 질문

Q. 지금 내 마음속 중심 단어는 무엇인가요?

Q. 그 단어에서 출발해 오늘의 나를 그린다면, 어떤 가지들이 펼쳐질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