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 작은 것들, 나를 담다

사물을 통해 쓰는 자기 표현

by 바다기린

책상 위의 작은 사물들이 내 하루를 대신 말해줄 때가 있다. 사용하던 펜은 내가 붙잡고 있던 생각을, 읽다 만 책은 멈춰 있던 시간을, 식어버린 차 한 잔은 놓쳐버린 여유를 보여준다. 매일 곁에 있지만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 속에, 어느 날 문득 눈길이 머물면 내 마음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물을 바라보고 이름을 붙이며 글로 옮기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된다.


마르셀 뒤샹 <샘>

예전에 참여했던 뒤샹 워크숍에서 나는 새로운 시선을 배웠다. 마르셀 뒤샹은 변기를 전시장에 놓고 <샘>이라 이름 붙였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바나나를 벽에 붙이고 <코미디언>이라 불렀다. 이름 붙이기와 의미 부여만으로도 사물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그날 수업을 진행했던 임지영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신의 가방 안을 떠올려보세요. 거기엔 무엇이 있나요? 하나를 꺼내 작품명을 붙이고, 짧은 글로 의미화해보세요. 그것이 곧 예술입니다.”


그날 내 손목에 있던 머리끈을 보며 이렇게 썼다.

<자유를 찾아서>

“꽉 조인 건 싫어. 느슨하게 풀자. 자유롭게! 내 맘도 그랬으면 좋겠어.”


짧은 글 한 줄이었지만, 그 안에는 답답하게 조여 있던 나와 풀리고 싶었던 마음이 함께 담겨 있었다. 머리끈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나를 가두던 힘과 내가 꿈꾸던 자유를 동시에 상징하는 작은 자화상이었다.


그 후로 나는 책상 위의 사물을 바라볼 때 예전보다 오래 머문다. 무심히 두었던 컵이 내 하루의 휴식을 보여주고, 연필은 나의 집중력을, 포스트잇은 내 머릿속의 흔적을 말해준다. 사물을 바라보고 이름 붙이는 일은, 사실은 나를 들여다보고 글로 옮기는 일이다. 작은 사물 하나가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그림 앞에서 마음을 빌려 쓰고, 중심 단어 하나를 펼쳐보는 일은 모두 같은 자리로 모인다. 일상의 작은 표현들이 모여 나를 더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거울 앞에 서는 순간, 나는 알게 된다. 예술은 거창한 무대나 특별한 도구에서만 태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 곁에 있는 작은 것들, 내가 이름 붙여주는 순간, 그것이 이미 예술이 된다는 것을. 이 작은 실천들이 모여, 언젠가 다른 이들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될 것이다.


– 사물이 말해준 오늘 –

책상 위에 두었던 작은 것 하나,

그저 물건인 줄 알았는데

내 마음을 담은 또 다른 얼굴이었다.

사소한 것들 속에 숨어 있던 나를

오늘 비로소 만나게 된다.


실천 질문

Q.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물 하나를 골라 작품명을 붙여본다면, 무엇이라 부르고 싶나요?

Q. 그 사물이 내 마음을 대신해 말한다면, 어떤 문장을 적어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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