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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욱 Mar 17. 2020

망상은 희망을 만나 계획이 된다

폴 토머스 앤더슨 <펀치 드렁크 러브>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는 단연 나의 베스트 영화중의 하나다. 군대에서 본 영화중 몇 안되는 나의 별 다섯개짜리 영화인데 아직도 그때의 충격이 생생히 기억난다. 수려한 카메라 무빙과 스토리텔링이 난잡하고 지루할 수 있는 3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의 영화를 매력적인 이야기로 뒤바꿔 놓았다. 어제 펀치 드렁크 러브를 보면서 내가 왜 매그놀리아에 이토록 끌렸는지를 알게 되었다. 


     폴 토머스 앤더스의 두 전작 <부기나이트>와 <매그놀리아>는 닮은 점이 많은 영화다. 등장인물이 다수 등장하고 그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한 장소로 모아 움직이는 카메라 속에 롱 테이크로 담는다던지, 미국의 속물주의적 환상속에 관계로 얽혀있는 인물 구성이라던지, 단절된 이야기들이 마무리되어 갈 수록 한가지 방향으로 수렴한다던지.


    <펀치 드렁크 러브>는 그에 비해 ‘베리’라는 한명의 남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하지만 전 작품들에서 보여준 다양한 인물의 입체감은, 여기서 한 인물의 다양한 사건의 산재로 변형되어 그대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무언가를 부수는 행위, 풍금,폰섹스, 푸딩과 마일리지등 여러가지 동떨어진 듯 존재하는 오브제들이 동시에 계속해서 나타나며 영화의 입체감과 리듬감을 형성한다. 특히 중반부 배리의 사무실에서 베리와 레나가 대화하는 장면속에 이 모든 요소들이 긴장감을 형성하며 굉장히 정신없고 다급한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앤더슨 감독은 이 영화가 ‘아트 하우스 애덤 샌들러 영화’라고 설명했다. 처음 부터 한 인물을 위한 영화라고 선포하며 이야기를 하며, 그 인물을 그리고 움직이게 만드는 과정에서 영화적 장치가 발생하며 영화에 색감을 입혀 준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오브제들은 현실적인 것 (영화 진행상 등장 할 만한 것)과 초현실적인 것 (현실에서 등장하기 힘들거나 영화 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점이다. 현실적인 상징물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푸딩으로서 마케팅의 헛점을 이용해서 마일리지를 모아 영원히 세계여행을 다니려는 베리의 현실적 목표를 보여주는 것이 있고, 베리의 외롭고 고독한 세계가 엇나가고 극복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폰섹스가 있다. 초현실적 오브제로는 영화의 가장 처음 등장하는 풍금이 대표적인데, 누가 풍금을 놓고 간 것인지, 풍금이 훔친 것인지 아닌지, 주인공은 풍금을 왜 가져왔는지 그 어느 것도 설명이 되어있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미스테리한 오브제들은 베리의 숨기려는 태도, 고립된 태도와 결합해 외부세계와 자신의 단절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들을 끊임없이 그 괴상한 풍경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초반의 베리의 누나가 그랬던 것 처럼 ‘저 푸딩들은 다 뭐야?’ ‘저 풍금은 뭐야?’ 푸딩에 대한 질문에서 어쩌면 분리된 외부세계와 베리사이에 우린 베리쪽에 위치하게 된다. 베리의 계획을 전화를 통해서 그리고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모습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풍금에 대해서는 우리 (관객)조차 금시초문인 철저히 베리만의 고독한 세계이다. 그래서 우리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풍금이 뭔데? 나는 폴 토머스 앤더슨이 쓰는 이런 불친절하고 초현실적인 장치들은 관객과도 동떨어져있는 철저한 베리의 고독을 나타내기 위해 썼다고 생각하며, 그 몰이해는 영화 말미에 베리가 희망을 발견하며 모두 의미를 찾고 맞아 떨어진다. 


    이런 초현실적인 오브제에 대해만 글을 써도 참 길어질 것 같다. 베리의 파란수트 (우리는 베리가 수트를 입기전의 모습을 영화안에서 볼 수 없다.) 베리가 판매하는 요상한 물건도 분명히 상징하는 바가 있어보인다. (예를 들어 베리는 어렸을적 자신을 놀리자 유리문을 깼고, 파티중에도 유리창을 깬다. 베리의 사무실은 좁은 유리창으로 둘러 쌓여 있고, 매트리스맨의 가구매장은 커다란 유리창으로 둘러쌓여 있다. 이런 와중에 유리로된 뚫어뻥과 그안에 들어있는 쌀알을 그저 괴상한 오브제라고 칭하고 넘어가긴 힘들다.) 어떤 평론과 해설을 찾아봐도 쉽게 이해가는 해석을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해석에 어떤 방향성을 설정해 두는 것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전작과 다른 앤더슨감독의 초현실적인 내러티브로 안에서 데이비드 린치와 코엔형제 감독으로 부터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한다. 두 감독 모두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를 다루지만 그 방법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일단 코엔형제의 경우 그들이 난해하고 독특하고 비일상적인 장치를 영화 중간에 도입시키지만 그 장치들은 어디까지나 영화의 플룻과 맥락, 설정과 모두 맞아 떨어진다. (이점이 그들의 매력이 아닐지) 그래서 감독이 어떤 비유와 상징을 사용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그 비유가 영화안에서 이야기의 흐름에 관해서든 인과관계에 대해서든 말이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예를 들어보자 바톤 핑크에서 쩌적소리를 내며 기괴하게 말리는 벽지는 문트의 열기라는 요소로 나중에 맞아 떨어지며, 의문의 살인사건 역시 문트의 등장으로 맞아떨어진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감독의 주제를 전달하는 동전은 계산을 하던 장면이라는 맥락에서 맞아 떨어진다. 그남자는 거기에 없었다 에서 뜬금 없이 UFO가 등장하고 실제로 주인공이 그것을 관찰 할 때도 주인공이 감옥에 갇혔는데도 불구하고 홀로 문을 여러겹 열고 나오는 묘사가 그전에 등장하면서 초현실과 현실사이에 뚜렷한 구분을 짓는다. 코엔 형제는 서스펜스적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것이 확장되면서 현실에 대한 철학적 함의를 보여주긴 하지만 서스펜스 안에서는 그 모든 장치들이 연결되고 상호작용 한다.


     반대로 린치의 영화에서는 이러한 적절성과 맥락을 깨부수는 장치가 등장하는데 마치 ‘영화는 영화일 뿐이니까’라고 우리한테 말해주는 것 같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의 열쇠라던지, 실렌시오 극장 그리고 블루 벨벳에서 벤의 ‘in dreams’ 같은 독특한 시퀀스가 영화의 이야기적 적절성을 깨부수고 괴상한 기운을 형성한다. 린치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서스펜스 보다도 어떤 분위기의 형성인 듯 보인다.

     이런 점에 있어서 <펀치 드렁크 러브>의 장치들은 코엔 형제보다는 린치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첫 장면에서의 차 사고는 전적으로 분위기적인 것으로 보이며 그 후 아무런 언급도 나오지 않는다. 수트나 쌀이 든 뚫어뻥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오이디푸스적 관점에서 블루벨벳의 프랭크와 여기서의 매트리스 맨도 겹쳐 보인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하나의 외로운 인간을 정말 잘 그려낸다는 것이었다. 외로워서 구석에 쳐박혀 아무말도 안하는 외로움 보다, 그걸 숨기고 거짓말하고 어떻게든 괜찮은 척하며 살아보려하는데 그건 잘 먹히지 않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이상한 취미를 하며 살아가는 , 어떤 이해되지 않을 벽을 자신과 세계 사이에 세워 두고 사는 베리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특히 바에가서 베리가 리나에게 비밀스럽게 자신의 마일리지 적립 계획을 늘어 놓는 것은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앤더슨의 영화는 동화적이지 않다. 되려 포르노 적이다. 현대자본주의에서 외로운 위치에서 성적인 욕구의 결핍을 안고있는 인물을 낭만적인 서사로 그려내는 능력이 있다. 베리는 자기의 감정이 컨트롤 되지 못 할때 마다 좁은 공간으로 숨어 버린다. 어렸을 때 누나들이 자신을 게이 소년이라 놀려 유리문을 부수었을 때 역시 개집을 짓고 있었다. 그런 베리의 꿈은 ‘어디든지 마음대로 돈 없이’ 갈 수있는 것이다. 얼마전 초소에서 기무대 아저씨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모든 중년 남성들의 꿈은 경제적 독립’이라고. 그래서 베리의 꿈은 틈새를 이용해서 ‘한탕’해서 경제적 성공을 이루려는 꿈으로 해석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속물적인 이런 아이디어가 슈퍼마켓에서 푸딩을 모으는 괴상한 기표가 되면서 베리라는 성인남성의 꿈을 대변하면서도 귀여운 캐릭터를 그려낸다.




참조 : Blossoms and Blood: Postmodern Media Culture and the Films of Paul Thomas Anderson - Jason Sp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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