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테넷>
시간을 다룬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한 개인의 판단, 사유, 의지라는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다루는 각기 다른 태도(혹은 기억, 몰입, 희망 또는 불안)를, 타자로 의인화하여 모두 '지금 여기'로 불러와 뒤섞어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과거에 발생된 역사들의 불가해하고도 특수한 사건들의 조각이 현재의 사유에 의해 판단되고 그러한 사유로 말미암아 또다시 불가해한 모습으로 도래할 미래에 자신을 내던지거나 맞서 싸우며 존재해가는 방식을 마치 인사이드 아웃에서 감정들을 의인화하듯 서사화한다. 캐릭터들이 그들의 과거와 미래를 다루는 각기 다른 방식들은 단지 선형으로는 이야기하기 힘든 복잡한 존재방식이다.
주인공은 공항의 금고에서 처음으로 인버전된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싸우는데, 극 중후반부에 가서야 이것이 전혀 무의미한 싸움이었음이 드러난다. 단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권총과 벽에 박힌 탄흔이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야기된 공포를 부추기고 자기 방어의 의지 하나에 의존해서 결투하도록 부추긴다.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튀어나와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진 마스크 쓴 불명의 정체는 자신이 그 타자의 위치에 섰을 때 비로소 의미의 세계 속으로 들어온다(관객 또한 '이렇게 된 거구나!'라고 말하며 동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의미란 결국 무의미에 불과하며, 결국 대상은 텅 비어버리고 남는 건 서로가 서로를 가리키며 빙빙 도는 의지와 판단뿐이다.
닐은 자기 생의 종착지임을 알면서도 그곳으로 향하는데, 이는 마치 그리스 비극에서 시인들이 주인공의 운명을 다루는 태도를 반대로 뒤튼 것과도 같이 보인다. 주어진 운명 앞에서 개인의 의지는 파멸하지도, 순응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의지는 신탁이 들려옴과 동시에 발현된다.
닐이 자신만이 적격자임을 알고 문을 열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는 갈 때에 그것은 삶의 의지를 접고 들어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완성을 위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주인공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처럼, 그는 아직 잔여 하는 다른 모습으로 계속 살아간다. 나는 이것이 추상적이고도 개인적인, 타인에 관한(혹은 자기 자신에 관한) 기억의 잔류에 관한 의인화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운명론적 염세주의로 빠지기 쉬운 시간여행이란 주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미래로 있어가야 할 존재인지를 말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