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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오라비행 Aug 03. 2019

음주하는 삶

수요윤

술을 애정한다. 술‘자리’보다 ‘술’자리가 좋다. 술의 매력은 술과 함께 살아가는 날이 길어질수록 짙어진다. 술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추억 소환이다. 어떤 술을 마시면, 특정한 장소 또는 사람이 떠오를 때가 많다. 스텔라 맥주를 보면 영어 이름이 Stella인 나의 애정하는 친구가 떠오른다. 코젤 다크 맥주를 보면 “흑맥주는 코젤”이라며 코젤만 먹던 지인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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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걸리는 대학교의 푸른 잔디를 떠올리게 한다. 하루는 친구와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를 한 잔 한 잔 들이키며 사는 이야기들은 한참 나눴던 날이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친구’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 등. 깊은 이야기들을 참 많이 했던 거 같다. 돈독해진 만큼 취기도 달달하게 올랐었다. 기숙사로 가자며 옮긴 발걸음은 어느덧 우리를 기숙사 뒤 잔디 언덕으로 옮겨놓았다. 잔디 언덕에 드러누워서는 또 한참을 얘기 나눴던 거 같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누워 있다가 쯔쯔가무시 걸린다는 얘기를 했던 거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때 함께 바라봤던 하늘과 함께 느꼈던 밤의 촉촉한 공기는 왠지 여전히 짙게 남아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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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은 종류가 무어든 나를 어김없이 호주로 데려간다. 까베르네 쇼비뇽이 뭐고, 쉬라즈는 뭔지, 모스카토는 모기 종류인가 로제는 파스타 종류인데 왜 와인에까지 쓰여 있어 나를 힘들게 하는가 했던 그때, 멜버른의 BBQ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처음 와인을 접했다. 그땐 뭐가 그렇게 두렵고,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와인 따르는 내 손은 늘 서툴렀고 실수하지 않을까 긴장했다. 서빙 접시들을 왕창 떨어뜨리기도 하고, 서빙하다가 바닥에 미끄러져 바닥에 나의 전신을 밀착해보기도 했다. 참 많이 헤맸던 나날들이었다. 그 공간에서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맺는 방법 또한 어려워했다. 소심의 끝자락에 서있던 내가 택한 전략은 침묵이었다. 말하지 않기. 그러면서도, 일이 끝나고 뒤풀이 차원으로 가졌던 술자리는 늘 끝까지 남았다. 술이 좋았던 게 분명하다. 그러다가 하루는 술을 왕창 마시고는 한 선배에게 “제가 동네북인가요?”라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물론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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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에 대한 주류세가 비교적 낮아지면서 한국에서도 와인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와인에 대한 나의 추억은 점점 색기로 채워지고 있다. 와인만 먹으면 왜 그리 색기가 발동하는지 모르겠다. 쓸데없는-말 그대로 정말 쓸 데가 없다- 성욕이 불타오른다. 관능미가 넘쳐흐르는 거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늘 똑같을 거면서 와인에 취기가 오르면 괜히 섹스도 더 농밀하게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오만함이 찾아든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와인을 좋아한다는 거다. 성욕을 해소할 곳은 없고, 와인은 먹고 싶고. 와인을 줄이든, 성욕을 해소할 방법을 찾든 해야 할 텐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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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에 대한 추억은 보호자와의 한 잔이다. 바로 위에 성욕에 대한 글을 쓰고 나의 보호자를 거론하려니 약간의 죄책감이 들긴 하는데, 어쨌든. 소주는 보호자의 최애 술이다. 보호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김없이 소주를 들어 올린다. “한 잔 해야지?” 보호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는 이 말이 참 싫었다. 맨날 한 얘기 또 하는 보호자의 모습이 싫었다. 그런데, 요즘은 맨날 한 얘기 또 하는 보호자의 레퍼토리와 “한 잔 해야지?” 하며 잔을 꺼내 드는 보호자의 모습이 그립다. 그런 얘기들이 나를 친밀한 안온함에 녹아들게 한다. 이번 주에는 본가에 간다. 한 잔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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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보다 ‘술’자리가 좋다. 누군가와 자리를 함께 했을 때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던 잔향들이, 술이 함께 했을 때 ‘술’을 매개로 유난히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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