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야? 아니면 혹시 다른 사람이야?”
엄마는 잠시 웃더니, 장난스럽게 대답한다.
“그건 비밀이지~”
나는 궁금하면서도 묘하게 그 대답이 좋다. 숨겨둔 첫사랑의 이야기를 알 것 같기도 하고, 끝내 알 수 없을 것 같기도 해서.
첫사랑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되묻는다.
“근데 첫사랑의 기준이 뭐야?”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다. 처음 가슴이 뛰었던 사람, 처음 사귀었던 사람, 혹은 가장 서툴렀던 사람. 그중에서 유독 마음에 남는 대답은 ‘가장 서툴렀던 사랑’이다.
사실 처음은 다 서툴다.
처음 배우는 것들은 늘 어설프고, 마음과 달리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다. 첫사랑도 그렇다. 좋아하는 마음은 크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해주고 싶은 건 많은데 늘 서툴다.
그래서 나는 문득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도, 그 본질은 첫사랑과 닮아 있지 않을까?
엄마에게 늘 고맙고 잘해주고 싶으면서도, 막상 입에서 나오는 건 무심한 말뿐이다.
엄마가 로그인 하나 못 한다며 나를 부를 땐 귀찮다. 행사 상품이라며 사 온 간식이 정가보다 더 비싸면 답답하다. 나를 위해 사 왔다는 잠옷이 내 취향이 아닐 때는 괜히 짜증이 난다.
그리고 늘 같은 패턴.
투덜댄 뒤, 돌아서면 후회한다.
엄마가 누구보다 나를 위한다는 걸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다음엔 꼭 다정하게 해 줘야지’ 다짐하지만, 쉽지 않다.
친구들과는 소소한 일상도 술술 얘기하면서, 정작 엄마에겐 속내를 감춘다. 자주 보는 친구들과는 매일 카페를 가면서도, 엄마와는 반년에 한 번 겨우 밥을 먹는다.
얼마 전 본 드라마 <첫, 사랑을 위하여>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엄마 지안은 딸 효리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고, 효리 역시 엄마의 자랑이 되려고 아픔을 혼자 감당했다. 서로를 위해 애쓰다가 오히려 멀어진 모녀의 모습.
그 장면이 내 마음을 깊게 흔들었다.
나 역시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들어왔다. 그런데 막상 대학생이 되고 나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밤새 술도 마시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엄마 대신 나 자신을 더 돌보고 싶었다. 그때부터 엄마는 나에게 ‘자유를 막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결국, 참아왔던 말을 내뱉었다.
“엄마는 이제 엄마 인생 좀 살면 안 돼? 친구도 만나고, 취미도 갖고, 제발 나만 붙잡지 말고.”
순간 엄마의 대답이 나를 멈추게 했다.
“엄마에겐 이미 이게 인생이야.”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의 인생은, 곧 나였다는 사실. 엄마는 평생을 나를 바라보고, 나를 위해 살아왔다는 사실을 나는 잊고 있었다. 아니, 외면하고 있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첫사랑이 꼭 연애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는 걸.
첫사랑은 서툴러서 상처 주고, 후회하면서도 다시 다짐하게 만드는 사랑. 표현은 미숙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간절한 사랑.
그리고 내 삶에서 그런 사랑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엄마가 나를 처음 안았을 때부터.
내가 엄마 손을 처음 잡았을 때부터.
엄마의 첫사랑은 결국 나였다.
그리고 내 첫사랑도 엄마였다.
다만 너무 익숙해서, 너무 가까워서, 그 사랑이 첫사랑인 줄 잊고 있었던 것뿐이다.
어쩌면 첫사랑은 끝내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조금 서툴고, 자꾸만 미안하면서도, 결국 평생 가슴에 남는 사랑.
그 사랑이 내게는 엄마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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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