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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May 08. 2023

모두가 떠난 본디에 남은 건

본디에선 추억을 팝니다

“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나요?”

아버지는 스팸 전화가 올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즘은 스팸이다 싶으면 말없이 바로 끊어버리시지만, 저 물음은 새삼 신선했다. 뭐랄까 나는 스팸 문자나 전화 자체를, 전문기관에서 오는 것처럼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내 정보를 아는 것에 이렇다 할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 개인정보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일까? 그렇지만 이따금씩 날아오는 ‘해외에서 로그인이 시도되었습니다’ 문자는 개인정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개인정보에 날카롭게 반응하지만 동시에 무뎌져있는 모습이었다.



이거 모르면 바본디

개인정보 관련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단연 ‘본디’였다. 올해 2월, 평소처럼 들어간 인스타그램에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동글동글한 아바타를 자랑하고 있었다. 놀랐던 건 생각보다 트렌디한 옷을 입고 있었고, 비슷비슷한 모습이 아닌 각자만의 특징이 돋보이는 개성 있는 아바타들이 많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 친구들이 다 해서, 유행이라서 해 보고 싶었다는 생각보다는 나도 한번 진짜 나처럼 꾸며볼까?라고 생각했다.


미루고 미루다 이제 해볼까 하려던 찰나에, 본디에서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터졌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속도는 본디가 주목받았던 속도만큼이나 빨랐다. 치명적인 논란이 일었으니 사람들이 떠나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만, 이번 개인정보 유출에 사람들이 특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말은 여기저기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고 일부 웹사이트에서 ID와 비밀번호가 해킹되어 유출됐다는 소식, 그리고 그게 자신이 사용하는 웹사이트인 경우도 분명 있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본디를 보고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주는 파급력과, 그 덧없음 두 가지를 느꼈다. 본디가 한창 인기를 끌던 중에 논란이 터져서 그렇지, 본디가 조금만 더 자리를 잡았다면 어땠을까? 1년 뒤에 논란이 일어났다면 이렇게까지 모두가 떠나갔을까? 그리고, 지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인스타그램’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일어난다고 하면 우리는 과연 앱을 지울 것인가? 500만 회의 다운로드가 무색할 정도로 개인정보로 인해 모두가 떠나간 본디의 모습을 보면 개인정보는 파급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한때 개인정보 논란이 크게 일어났음에도 현재 숏폼계의 1인자로 자리 잡은 틱톡의 모습을 보면 개인정보는 덧없는 거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이제야 본디를 깔아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었다. 사람이 있어야 되는 SNS 앱에 사람이 없으니 제대로 즐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참 재밌었다. 내 캐릭터 꾸미기(특히, 바지 밑단 접히도록 연출, 머리 스타일을 물광으로 설정 가능한 것과 같은 디테일들이 정말 좋았다), 내 방 꾸미기, 플로팅 하며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기, 친구 방 놀러 가서 압류 딱지 붙이기… 늦게 맛본 이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당장이라도 친구들을 소환하고 싶을 정도였다.

에디터 벤치 아바타

그러면서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게 있다. 찜찜한 기분이었다. 그림처럼 나만의 캐릭터를 그려나가는 재미의 이면에는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 찜찜함은 생각보다 커서 본디가 주는 즐거움을 집어삼키기에 충분했다. <카메라 액세스 허용>, <연락처 공유 허용> 등 평소 같았으면 아무 생각 없이 ‘허용’을 눌렀겠지만 본디에선 선뜻 클릭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고 나도 이내 앱을 삭제했다.

앞서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인스타그램의 이야기였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원래 이 질문을 적을 때 나는 ‘그럼에도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을 지우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본디를 직접 플레이해 보면 해볼수록, 개인정보를 보호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앱을 플레이하는 데 큰 제약이 되었다. 실제 개인정보 보호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사실 다시 대답하더라도 ‘인스타그램을 지울 것이다’라고 확답은 못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쓰지 않는 이유’에 ‘개인정보 유출’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의 친구들만 보더라도 ‘틱톡’을 안 쓰는 이유에는 ‘개인정보 유출’이 여전히 굳건히 버티고 있다.



본디에선 추억을 팝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본디에서 많은 걸 할 수 있었고, 많은 걸 ‘더’ 하고 싶었다. 본디가 새로운 SNS로 부상한 이유에도 공감이 갔고 지금 당장은 논란으로 인해 이용자가 급감했어도 언젠가는 다시 부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기간 접속하지 않아 양팔을 벌린 채 가만히 있는 본디 캐릭터들

하지만,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싶어 말 못 할 고민을 꼬깃꼬깃 해류병에 넣어 바다에 던졌던 것도,

친구 방에 놀러 가 압류 딱지라며 빨간 포스트잇을 붙이며 해맑게 놀았던 것도,

옆집, 윗집, 아랫집 모두가 나의 친한 친구들인 아파트에 살아본 것도,


이 모든 추억들이 나의 개인정보들을 팔아서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우리의 눈에 보이는 건, 그리고 모두가 떠난 본디에 남은 건

팔리기만을 기다리는 양팔 벌린 우리 아바타의 모습이었다.


본디는 다시 번듯이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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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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