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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Sep 12. 2023

썩지 않게 오래오래

누군가의 목소리가 갖는 의미

슬프지 않아


딘이 컴백을 하지 않아도,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나도 슬프지 않다.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이니 말이다. 벌써 ‘딘 AI’로 만들어낸 ‘New Jeans’ 커버곡은 1달 만에 225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중 필자도 상당 부분을 기여했다.) 심지어는 ‘딘 AI’로 만들어낸 플레이리스트까지 있다. 이제는 ‘인스타그램을 지겨워하는 진짜 딘’의 컴백만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필자도 딘의 소소한 팬으로서 그의 컴백을 그리워하며 ‘딘 AI’ 커버곡들을 듣던 중 한 댓글을 보았다.

분명 나도 이런 감정 때문에 그의 AI로 만들어낸 음원들을 즐겨 들었던 것이다. 기약 없는 기다림. AI는 분명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불가능에 가까웠던 고인의 목소리를 부활시키는 일도 가능해졌다. 덕분에 프레디 머큐리가 정인의 ‘오르막길’을 부르는 것도 듣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 노래들을 듣다 보면 묘한 골짜기가 생겼다. 워낙 AI 기술이 좋아졌기에 불편하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래서 불쾌한 골짜기라고 표현하진 않았다) 분명 어딘가 찝찝한 것이었다. 나는 과연 이들의 노래를 사랑한 것이었나? 이들의 아주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음색’만 좋아한 것은 아니었나? 만약 음색만이 노래를 좋아하는 기준의 아주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라면, 앞으로 음원의 의미는 무엇일까.



선 넘어간 AI


전문가들이 AI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매번 등장하는 단골 소재는 ‘AI가 거의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세상에 인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답은, ‘그래도 감정은 AI가 못 건드려요.’ 정도. 하지만 음성생성형 AI는 이 맹점을 정확하게 건드린다.


사람들이 AI커버곡을 즐겨 듣는 이유는 AI가 사람들의 감정을 ‘제대로’ 건드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상만으로만 어림짐작했던 것을 현실로 만들어준다. 심지어는 녹음 현장까지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녹음한 사실은 없지만, 어쨌든 음원이 나온 것은 사실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박명수 AI의 커버곡을 꼭 들어보길 바란다. 해당 영상의 댓글 반응처럼, 손 한쪽을 귀에 올리고 고개를 흔들며 녹음을 했을 박명수까지 그려지니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aI7C5zK_2Ns

이렇게 상상을 하든 AI가 만들어낸 노래를 즐겨 듣든, 뭐가 되었든지 팬들은 AI가 만들어낸 커버곡을 통해 만족감을 얻는다. 때로는 감동도 받는다. 엠넷의 ‘다시 한번’에서는 터틀맨의 목소리를 AI로 구현해 거북이 멤버들과 함께 무대를 꾸몄다. 관객석과 시청자들의 반응은 울음바다였다.


AI가 만들어낸 커버곡들을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름이 돋을 정도다. 듣고 있자면 내가 AI의 커버곡을 듣고 있는 건지, 아티스트의 새로운 커버곡을 듣고 있는 건지 쉽게 분간하지 못할 정도다. 과거에는 단순히 음색과 음정 정도만 구현해 냈다면, 요즘 AI는 아티스트의 숨소리와 특유의 음 처리까지 반영해 낸다. 결국 아티스트도 이론적으로는 호흡이나 음 처리 등으로 감정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는데, AI가 이 감정의 영역까지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썩지 않게 오래오래


때로는 상상이 가장 재밌다는 말이 있다. 상상하던 것이 현실로 바뀌면, 생각보다 허무하고 의미 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AI로 만들어진 커버곡은 바로 그 반대에 있는 듯하다. AI 프로그램 몇 번만 돌리면 상상만 하던 그 목소리로 노래를 만들 수 있으니까. AI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그 현실은 생각보다 더 재밌다! 덕분에 이제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목소리는 없어졌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라진 사람들을 부활시킬 수 있다.


음성생성형 AI가 막 활성화되기 시작할 때 즈음, 사실 필자는 AI커버곡이 이렇게까지 많은 사랑을 받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신기하다' 수준일 줄 알았지, AI가 부른 플레이리스트까지 나오게 될 줄이야.

만약 음성생성형 AI가 더 보편화되어서 너도나도 이 기술을 쓰는 날이 온다면, 살면서 가장 힘을 얻었던 사람의 목소리를 AI로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이제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되었지만, 그 사람이 평소에 자주 해주었던 말 “OO이가 누군데.” “당연히 잘할 수 있어.” “괜찮아.” “그랬구나.” 딱 이 4마디를 되살려 듣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AI의 커버곡은 꾸준히 사랑받을 것 같다. 약간의 기계음이 섞여있어도, 조금은 어색할지 몰라도,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오래오래 듣고 싶은 마음은 영원할 테니까. 인간의 기관 중 청력은 심장이 멎어도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기관이라고 한다. 오늘은 당신으로부터 멀어진 누군가의 목소리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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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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