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진짜 너무 아파요
단언컨대, 나는 단 한 번도 연애 프로그램을 스스로 찾아본 적이 없다. 솔로인 채로 나오던, 헤어진 연인과 나오던, 아니면 아예 새로운 연인을 찾고 싶어서 나오던 그 의도와는 아무 상관없이 남의 사랑 이야기에 흥미가 돋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연애 프로그램 과몰입형 콘텐츠를 보면 어떻게 남의 사랑에 저리 몰두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경외심마저 들고는 한다. 그래서일까,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창작물 또한 자연스레 로맨스 장르를 보지 않는다. 즐겨 보던 드라마의 중간에 무뜬금 핑크빛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때 김이 팍 샜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쩌다 서로 입술이라도 부딪히는 날에는… 차라리 그만 보기를 선택한다.
그럼에도 한창 연애 프로그램이 유행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환승연애를 나가자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머릿속에 몇몇 개의 얼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데, 어쩐지 속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네가 자기야 미안해했잖아? 그럼 환승연애 이딴 거 안 나왔어.” 같은 미련 뚝뚝 떨어지는 대사보다 분노가 흘러넘치는 주먹을 날릴 확률이 훨씬 높다. [단독] 연애 프로그램 참가자 사이에서 육탄전 벌어져•••누리꾼 ‘충격’ 따위 기사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으니, 상상은 이쯤 해보도록 하자.
이렇게 남의 사랑에 박한 나는 나름 확고한 연애관을 가지고 있다. 연인 관계도 하나의 인간관계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관계에서 내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느냐, 이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가사처럼 분명히 끝이 존재하는 애석한 사랑의 말미에 다다랐을 때 분명한 성장의 가치와 앞으로 쏟을 애정에 대한 동력을 발견해야 한다. 그게 연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혹은 나 혼자만의 일방적인 감정에 불과했던 사랑을 쏟았던 기간 동안 내가 어떤 것이든지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 쓰고 보니 남의 사랑뿐만 아니라 내 사랑에도 박한 것 같다. 사랑이든 사람이든 하나의 관계를 형성하기까지 재는 것도 따지는 것도 많아 한때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여기기도 했다.
까다로운 연애관 탓에 사랑을 즐겨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게 되더라도 오랫동안 곁에 둔 사람에게서 오는 편안함을 사랑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데에는 스스로가 극한의 안정 추구형인 것도 한몫한다. 물론 첫눈에 벼락 맞은 것처럼 사랑하고야 말았던 경우도 있다. 불가항력과 같은 인간의 감정은 때로 예상치 못 하게 심장을 덜컹이게 하기 마련이니까. 모 연애 프로그램에 등장한 “내일 봬요. 누나” 따위의 로맨틱한 플러팅을 던지지는 않지만 내 방식대로 천천히 스며드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하늘빛에 맑게 반사되는 표면과는 다르게 검게 요동치는 호수처럼 까만 속내를 가진 채 말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이기적인 사랑 방식이 아닐 수가 없다.
사실 사랑 앞에서는 누구나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한때 시시하다 느꼈던 어린아이 장난 같던 사랑도 돌이켜보면 모든 이기적인 행동들의 집합이었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쏟으며 매일 밤을 설치던, 가슴 아프던 아린 사랑도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동의 결과였다. 이 모든 이기심 앞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했는가 돌이켜 보았을 때는 이미 이기적인 감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더랬다. 돌이켜보면 이기심이란 말이다, 빙빙 돌려 말하자면 상대에게 나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고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나 하나 편하자고 상대의 감정을 생각하지 않은 채 행동하는 것이다. 애처로운 감정을 아낌없이 남발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를 따지지 않고 일방적으로 호소하는 것. 사랑을 이기심에 비유했을 때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임을 직감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기적 유전자가 아니라 이토록 이기적인 사랑을 통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단어만 떠올렸는데도 이리 할 말이 많은 나에게 이 감정은 단점뿐일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장점도 존재한다. 몇 없는 나의 장점 중 하나는, 감정의 후폭풍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관계가 끝났을 때 절대 미련을 남기거나 후회를 하지 않는다. 물론 현재진행형일 경우 낮에는 정신 빼놓고 밤에는 눈물 빼놓고 지쳐 잠드는 게 일과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이 관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이 노력의 척도와 끝의 타이밍이 비로소 고점에 달했을 때 해묵은 감정들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어떻게 깔끔하게 잊고 털어버리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전제는 틀렸다. 나는 감정을 잊어버리거나 지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 후 나의 노력을 인정하고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뿐이다.
다시 생각해 보자. 혹여 누군가가 나에게 환승연애를 나가자고 한다면 기꺼이 나가줄 것이다. 대신 X에게 미련 덩어리 찌질이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끝난 관계에는 더 이상 질질 끌 미련도 부릴 추태도 없다. 미련 대신 아련은 존재하겠다. 상대에 대한 아련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감정을 온전히 쏟을 수 있었던 당시의 나에 대한 아련함이라는 것은 확실히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 그곳에 모일 새로운 인물들과 인연을 맺는 것에 또다시 최선을 다하겠지. 예상치 못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감정을 쏟고 눈물도 쏟은 후 끝내 내 노력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최선을 다해 주기를, 본인의 노력을 다 해주기를, 하는 이기적인 생각도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뭐 어떠한가, 사랑은 늘 이기적이고 사람은 늘 이곳에 있으니 기꺼이 관계의 첫발을 내딛고야 말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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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