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도 감정이 담겨있음을
정말 이해가 되지 않은 스포츠가 스키와 스노우보드였다. 나는 스키장을 그간 경험해 본 적이 없던 터라 더욱 이해가 불가능했다. 아니 겨울만 되면 하늘에서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데? 굳이 왜 비싼 돈을 내고 오들오들 떨며 눈을 밟으러 가야 하는가? 또한 저 높은 곳에서 맨몸으로 내려오는 위험한 스포츠 아닌가? 어디 하나라도 부러지면 어쩌려고 절레절레..
1982년에 태어나 2014년이 되어서야 처음 스키장을 가게 되었는데 순전히 내 의지가 아닌 자의 반 타의 반 무의식의 지배로 끌려갔다고 보는 편이 나을 듯하다.
교제 중인 여자친구분이 계셨는데 그 친구가 스키장을 어찌나 좋아하던지
게다가 그간 몰랐는데 내가 알고 지내던 동생 친구 형 모두 그간 종종 스키장을 같이 다녔더라 관심이 없던 분야여서 그런지 소식도 모르고 매년을 보내던 중 우연찮게 나온 후배들의 스키장 이야기와 여자친구분의 반짝반짝한 스키장 기대를 이뤄주고 싶어 생전 처음 스키장을 가게 되었다.
다들 스키 / 보드복을 가지고 있어 나만 따로 장비 대여샵을 이용했는데 그 눅눅한 보드복이 어찌나 찝찝하던지 이미 스키장을 들어서기도 전에 내 기분은 흥을 한참 잃은 상태였다. 게다가 윗도리와 하의가 청청이라니?? 다 반짝거리는 옷을 입었는데 왜 나는 청청인가??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여자친구분이 어찌나 즐거워하시던지 너무 환하게 웃으셔서 마치 잃었던 흥도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보드를 타본 적이 없는 건 여자친구분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운 지인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부츠를 신는 방법부터 배우기 시작했고 거기서 슬슬 다시 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결국 처음 배울 때 어쩔 수 없이 무조건 "선생" 이 필요한 스포츠라는 것이다.
아니 내 여자친구 분인데 내가 알려주지 못하고 가까운 지인(내 입장에서는 순간적 타인)의 힘을 빌려서 배우는 모습이 어찌나 그것이 단단히 질투가 나던지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거리는 무언가 뜨겁게 느껴지기를 반복했다. 초급부터 중급 상급 차근히 타기로 했지만 초급에서 바로 상급으로 올라가 속으로 씩씩 거리며 꾸역꾸역 내려오기를 몇 번을 반복했던지.. 다음 날 온몸이 부서지 듯 쑤시기 시작했다.
"엄청 좋아했는데.. 분명 다시 가고 싶을 건데.."
몸으로 뭔가 하는 건 딱히 재주는 없지만 필요에 의해 모르는 것을 배우고자 하는 근성은 또 둘째가라면 서러운 타입이라 그 즉시 논현으로 뭔가에 홀리듯 움직였고 이미 나도 모르게 보드복을 구매해 나오는 길이었다.
단순했다.
첫 번째 이유, 보드복이 한두 푼이 아니었으니 아까워서라도 스스로 스키장을 자주 가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이유, 첫 보드복이 정말 찝찝했다. 이걸 또 빌려 입어야 한다는 게 너무 창피하고 싫었다.
그날부터였다. 회사 업무를 진행하면서 귀동냥으로 보드 강의를 들었고 며칠 동안 보드 관련 동영상 강의를 반복 시청하기 시작했고, 스키장 시즌권 존재의 여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는 정말 퇴근 후 그나마 가까운 곤지암으로 거의 매일을 방문했다.
단순했다.
정말 내가 알려주고 싶었다.
대체 몇 주가 지났을까?? 14년 시즌이 끝나기 전 결국 내 손에는 중고 데크와 부츠가 들려있었다.
그렇게 15년 스키장 시즌을 맞이하기 전
내게 맞는 데크와 부츠 그리고 안전 관련 장비를 구매해 어찌나 행복하게 시즌을 시작하고 마무리했던지
이렇게 급격하게 근성을 부려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이 단순하게 너무 즐거워 그 시간을 바라며 배워본 게 또 있었나..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결국 14/15 시즌은 내가 바라던 대로 내 여자친구분을 알려주고 서로 재미있게 탈 수 있을 정도의 실력 까지는 되었던 것 같다.
순전히 겨울을 즐거워하며 흰 눈보다 더 눈이 부시게 웃는 그 모습이 너무 마음 좋았다.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해서 그 계절이 기다려질 정도로 가슴 설레며 행복했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 친구와 이별 후 지내다 보니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던 스키장도 몇 해를 그냥 보냈는지..
며칠 전 창문을 열어보니 날씨가 부쩍 추워진 것이 문득 스키장에도 눈이 내리겠다 싶은 생각에 잠시 옛 생각이 났다.
올해는 한번 가야지. 올해는 한번 가야지 하는데도
마지막 15/16 시즌 때 기억 때문인지 선뜻 또 쉬운 일은 아니다.
진짜 올해는 한번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