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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Nov 26. 2023

그날 겨울이라면 괜찮습니다.

사진에도 감정이 담겨있음을

 한낱 의미 없는 생각 따위와 잡념에 정신 못 차리는 하루였다.

머리가 왠지 종일 지끈 거릴 듯하여, 목적지 없이 무작정 외출을 서둘러해야만 했다.


딱히 생각의 출구는 없어 보였다.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 듯 결국 다시 처음부터 생각을 정리하고 시작하며를 반복하는 사이 나는 벌써 한강 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그제야 내가 듣고 있던 음악도 반복되어 재생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갓길에 차를 잠시 세워두고 숨을 고르려, 운전석 창문을 내리니 흐린 날이었는데도 어찌나 눈이 부시던지 한밤을 비추는 가로등은 한낮도 환히 나를 비추고 있었다.

한낱, 한낮이었다.


해결될 수 없는 되지 않을 일들을 어째서 이리도 마음 쓰이는지



가을이 지나간다. 부쩍 아침 공기가 깊어 옷깃을 여미게 되는 계절, 그리고 곧 겨울이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늦은 해가 뜨고 이른 해가 지는 계절이 되면 유독 옥탑방 살던 그때 내 시절이 생각난다. 겨울이 되면 전기장판으로 등은 뜨겁지만 윗 공기는 차가워 방 안에서 입김이 폴폴 나던 내가 살던 남들 보여주기 무척이나 창피한 집이 있었다. 툭하면 화장실 수도와 세탁기는 얼어붙기 십상이어서 아침이면 눈을 비비며 포트물을 끓여 씻어야만 했고, 화장실 수도를 위해 항상 난로를 따뜻이 화장실에 틀어두어야만 했다. 고스란히 차디찬 겨울바람을 맞았어야 하는 옥탑 구조상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볼품없던 내 방, 친구나 손님 모시기에도 나 스스로가 너무도 부끄럽고 형편없다 느꼈던 내 작은 방


냉장고조차도 없었던 나는 겨울이면 차가운 맥주를 마실 수 있어 이 계절이 참으로 좋았다.

좁게 열어 둔 창문 틈 사이로 불어오는 날카롭지만 시원한 이 계절의 겨울을 맞이하는 공기가 유난히도 좋았다.


기억을 끄집어 내 보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그곳에서의 아주 사소한 추억까지 아직도 매년 하나하나 기억하며 살고 있는 나 스스로를 가만 보고 있자면, 당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모든 부분에서 내가 참 많이도 의지했던 당신에게 어지간히도 고맙고 깊이 감사하고 있나 보다.


잠시 시간을 내어 동네 주변을 걷다 보니 어느새 코스모스가 잔뜩 피었더라 집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타고 아침 일찍 저녁 늦게 늘 움직이다 보니 벌써 이렇게 계절이 흘러왔는지를 느끼지 못했네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는 길목이면 늘 그날의 너와 나 그리고 함께했던 좋은 사람들이 생각이 난다. 



귓가에 누군가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실은 네게 주어졌을 행복이 잠시 누락되어 남들보다 고단하게 살아왔을 거라고 그간 수고가 많았으니 네가 원하는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딱 한번 주겠다고


"그래 너는 어느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내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저는 다시 돌아가기에는 조금 창피한 제 옥탑방 그 집 2013년 11월 아침으로 좀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굳이?"


생각해 보니 그리고 그간 살아보니

두 번 다시 그때 느꼈던 행복감은 그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을뿐더러 오늘의 제 앞으로도 느끼기 힘들 것 같아서요

복권 당첨 같은 건 딱히 바라지도 않고

제 수명이 얼마 남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5년 정도 가져가셔도 괜찮으니 허락만 하신다면

내일 아침은 조금 많이 추워도 그날의 옥탑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날 겨울이라면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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