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도 감정이 담겨있음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하며 별거 아닌 일들이 있다. 오래 알고 지내던 동생과 정말 오래간만에 만나 식사하며 그간 마음속에 고이 묵혀두었던 고마움의 인사와 선뜻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서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예전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아 맞다 그런데 형 그때 그 친구와는 왜 헤어지신 거예요? 둘이 잘 만나고 있었잖아요?"
- 아.. 그거? 실은 그게 또 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니었어
누군가에게 나는 다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초중고 과정의 성장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확실하게 다르긴 했다. 하지만 또 틀린 건 아니었다. 딱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기에 현실과 결과를 그냥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때로는 평범하지 않은 이 상황에 대해 억울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해결의 방안 따위는 없었다. 보호를 받는 학생의 신분이 아닌 성인이 되고 나서야 내 평범하지 않음을 남들은 모르게 감추며 살 수 있었다. 나 역시 내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부분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되도록이면 평범해 보이려 애를 쓰며 지냈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사랑을 했다.
하루하루가 늘 밝음이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나는 사랑을 했다. 그간 내가 살아온 지난 고된 과거가 단번에 해소되는 기분이었고, 아직 내가 살아있어 잘 견디어내 주어서 정말 다행스러웠다. 나 같은 사람이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았고, 사람이 사랑이 늘 그렇듯 몇 번의 아픔도 당연히 있었지만 또한 지나갈 일이라 여기며 그 마저 사랑했다. 잠시의 미움보다 그것을 압도할만한 사랑이 더 크지 않았나 싶다.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는지라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늘 고맙고 감사히 살았다.
주변에 생각보다 나를 마땅치 않아 하는 분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을 거라 짐작된다. 마찬가지로 내 친구를 얼마나 오죽 아끼었으면 더 좋은 사람 만나길 바라는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 내가 입장 바꿔 생각해 보아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 나랑 만나는 거 알고 있으시잖아? 왜 나를 싫어하셔?
"평범하지 않아서.."
생각보다 큰 아픔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평범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가장 가깝다 생각하는 생각했던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막상 듣고 나니 벌거벗긴 채 덩그러니 밖에 혼자 놓인 기분이 들었다. 그는 당시 내게 굳이 아픔을 주고자 일부러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게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집에 돌아와 생전 혼자는 마시지도 않았던 소주를 마시며 한참을 펑펑 울었다. 마치 뜯어낼 수 없는 네임택 같은 이 빌어먹을 인생의 꼬리표가 이렇게 까지 내 발목을 잡는가 싶었다. 원망해 봐야 딱히 내일이 달라질 건 없었다. 우리는 내 아픔의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 그냥 그런 별거 아닌 스쳐갈 수 있는 사소함의 속에 그는 내게 나에 대한 섭섭함을 이야기했다.
섭섭해.
또 이제와 생각해 보자면 그가 섭섭했을 만도 하다. 나는 당시 상당히 불안정한 위치의 상태였고, 무엇이든 내 앞에 주어진 부분을 너무나 잘하고 싶었다. 무엇이든 간에 인정받고 싶었고, 그게 다소 조금 과몰입의 상태에서 온 정신을 다 하다 보니 잠시 소원한 상태랄까?
그런데도 그 말이 어찌나 속이 깊이 상하던지, 실은 내 친구가 내게 섭섭했음을 그날 저녁 느끼고 있었다. 그날 새벽은 왜 그랬을까? 내가 그간 당신을 향했던 마음에 애써 참으며 이것 또한 사랑이다. 지나가면 별일 아니다 라며 꾹꾹 눌러놓았던 기억들을 그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내려놓은 말을 다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그렇게 또 세 번의 겨울이 오기 전 우리는 이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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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해라는 말이었어, 실은 돌아보면 이제와 생각해 보면 정말 별거 아닌 말이었는데, 그런데 그 별거 아닌 말이 어찌나 미웁던지 아마도 나는 내가 평범한 척 애써 감춰왔는데 그게 들통이나 늘 창피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별거 아닌 거지
결과적으로 오늘의 나는
내가 그토록 늘 감추며 살고 싶었던 평범함/평범하지 않음이라는 그 목적에 갇혀 무너져 버리는 상태는 다행히 아닌 듯하다. 보기에 평범해 보여도 비뚤어진 사람들을 참 많이 보아왔기도 하고, 적어도 나는 평범하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비뚤어진 사람은 아니라 생각하기에
그저 내 삶이 평범하지 않았던 거지 나라는 사람이 평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나름 잘 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