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세상은 기다려 주지 않지
요즈음 들어 자주 학생 시절을 추억한다. 그 이유는 바로 자격증 시험 때문인데, 시험 보는 장소가 학교이기 때문이다.
자격증 시험도 좋지만, 시험장소인 학교를 방문하는 것도 참 특별한 경험이다.
수험 번호를 확인하고 교실에 들어가면 나를 반기는 딱딱한 나무 의자와 합판 책상, 그 아래 공간에 빼곡히 담긴 교과서와 구겨진 채 남겨진 시험지가 눈에 띈다. 가정통신문이 비죽이 나온 모습이 너무나도 정겨워 슬쩍 쓰다듬어보았다.
시험이 시작하기 전 복도를 거닐면 학생들의 것으로 보이는 남겨진 슬리퍼 한 짝, 탈의실과 체육관까지 어딜 봐도 ‘학교’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집 근처에 시험장으로 쓰이는 학교가 없다 보니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강남권의 시험장으로 사용되는 학교는 한 번씩 다 가본 것 같다.
오늘은 여의도 쪽에 있는 학교에서 금융 자격증 시험을 보고 왔다.
오랜만에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칠판에 적힌 글씨를 물끄러미 보는데 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수업 진행에 방해될 시 경고 2번, 누적되면 부모님 상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경고? 부모님 상담? 사회인에게 경고의 끝은 해고다. 해고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건 그것으로 인한 패배감, 자책감, 상실감일 것이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탑재된 것인데 ‘해고’로 그 욕구가 좌절되면서 마음의 아픔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
그저 나답기만 해도 됐던 학창 시절이 그립다. 그때를 추억할수록 지금의 내가 견뎌내야 하는 책임이라는 무게들이 어깨를 짓누르고, 불현듯 몸서리쳐지는 선뜩한 느낌이 든다.
출근 시간을 지켜야만 하는 것, 상사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것, 때론 내가 하지 않은 일의 뒤처리를 맡아야 하는 것 등등.
이젠 익숙해져서 사회에서는 짊어지는 걸 당연시 여겼던 것들이, 추억 속 작은 교실 안으로 들어가자 아주 작은 돌맹이로 변해 있는 걸 봐서 감회가 새로웠다.
-번쩍 하는 감각과 함께 멍하니 시험지를 풀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어 누리는 자본주의의 돈 맛은 참 달콤했지만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그 이면은 의무와 책임으로 시꺼멓게 덧칠되어 쓰디쓰다.
시험 문제가 어려워서 그런가 유독 씁쓰레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