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한지는 얼핏 10년이 되어가는 듯 하지만, 정규직으로 일한 지는 4년, 5년이 되어가나 보다. 인사발령 이야기도 나오고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요즘을 지내고 있다.
일을 하면서 작은 상이나 표창 하나 받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소위 말하는 “업무 어필”을 무던히도 말하지 못해서 여기저기 그냥 흘러가게 두었다.
유독 회사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말을 하지 못하겠다. 다들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겠지만 윗사람들에게 살갑게 잘하기는 정말 어렵다. 어쩜 다들 그렇게 살갑게 잘 대하는 걸까?
그래서 나의 상사가 봤을 때 뭐하나 눈에 띄는 점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내가 하는 사업을 키우기 위해 협업도 많이 하고 성과도 많이 냈다. 이런저런 성과들을 모아서 상을 받아보겠다고 야심 차게 공적조서를 써봤다.
그런데, 상을 받나 싶었던 게 어그러졌다. 원래 상 욕심은 없지만 받을 것 같았던 상이 어그러졌더니 마음이 헛헛했다. 그리고 나의 성과가 부정당한 느낌도 들었다. 수공기간이나 어떠한 업무에서 부족했기에 그럴 수 있겠지만 그동안 이 팀에서 열심히 일했던 나의 성과가 아쉬웠졌다. 바로 다른 상을 써보려고 찾아봤다.
결국 자업자득인 걸까?
내가 열심히 일했던 몇 년의 성과가 일한 티를 내지 않았다고 없어지는 걸까?
갑자기 서러웠다. 회사 업무를 작은 일과 큰 일로 나눌 순 없다. 내가 봤을 때 작은 일도 그 누군가에게는 큰 업무일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업무의 규모에 상관없이 회사는 본인의 업적을 동네방네 눈물 훔치며 이야기해야 “일을 잘한다~”해주고, 묵묵히 사고 안치고 조용히 일하면 그냥 조용하게도 당연한 일이다.
예전 회식 자리에서 나의 상사님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아무리 네가 맡은 일 열심히 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내가 그걸 다 어떻게 아니?
티를 내줘야 아는 거야~
‘윗사람은 그런 거 살피라고 일도 적게 하고 권력도 주고 대우도 해주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저도 노력해보겠습니다.^^”로 넘어갔다.
말 한 들 무엇이 바뀌겠는가.
누가 그랬다. 결국 조직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 싫으면 네가 떠나는 것이라고. 우리 회사만의 한정적인 것인지, 우리 팀에서만 이러는 것인지, 정상적인 조직인데 연봉 평가 결과보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이러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인정받지 못한 그 무엇을 상으로 받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찾아보던 다른 상은 표창의 성격이 아니라서 인사고과에도 반영이 안될 뿐 아니라, 받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피드백이 왔다. 나는 사실 이러한 이유로 상을 받고 싶어서 써보고 싶었다고 말을 했고, 우리는 결국 올까 말까 한 다음 기회를 노려보게 되었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와서, 무엇을 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생각은 상, 하반기 끝낼 때 쓰는 실적서를 쓸 때도 매번 생각한다. 그리고 사업 분기 보고를 할 때도 매번 신기할 정도로 한다. 그런데 오늘 나의 성과를 생각하는 점에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떻게든 채워나가는 종이와는 다르게 , 이것 만은 애쓰지 않아도 보였으면 했다. 회사도 그렇고 이제껏 내가 살아온 나날을 돌이켰을 때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대출을 많이 갚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스쳐지나간 인연들도 있다. 아직 내 곁에 있어주는 소중한 사람도 있고, 잘 먹고살았다는 배 둘레 햄 같은 살도 든든하게 자리 잡았다. 즐거웠던 기억이나 슬펐던 기억도 존재한다. 그런데 유형의 형태를 가지고 증명이라는 이유로 남은 것은 사람일까?
오늘 전화를 받다가 화가 너무 났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는 것도 화가 났고, 상도 어그러지고 여러 시끄러운 생각에 마음에서 불이 났다.
그때, 친한 주임님이 귀여운 곤약 젤리를 가지고 달려왔다.
“주임님! 이거 먹어요!”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돌아서서 가는 뒷모습에 많은 말이 담겨있다. 그 곤약젤리를 받아서 먹는데 모든 것이 사라졌다. 아까 고마웠다는 말에
주임님은 이렇게 말했다.
“주임님 텐션이 떨어진 것 같아서 뭐라도 먹어야겠구나 했는데, 마침 택배 온 게 기억났잖아요!! 얼른 내려가서 택배 가지고 와서 드린 거예요”
나에겐 그래도 사람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나는 이번 생을 살면서 무엇이라도 남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나의 성과로 거창한 상을 받고 싶고, 기록으로, 사진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내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증명될 수 있는지 고민해봤다. 이름 석 자가 쓰이고 지워지는 것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해야 하나?
우리는 말한다.
넌 너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존재라고.
어쩌면 우리는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 걸까?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내 기억 속에선 여전히 나의 손을 잡고 함께하신다. 우리는 타인의 기억 속에 좋게 남기 위해 착한 척도 해보고, 거짓말도 해보는 것이 아닐까.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나쁘게 기억되긴 싫으니까. 혹은 자신의 세계에서 그냥 조용히 지나가는 사람 37의 스치는 역할이 되기 위해 자발적 평범함을 선택하기도 할 것이다. 신경 쓰이는 일 없이 조용히 넘어가기 위해서 말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텔레비전에 나와서 사람들의 인기를 받는 유명인이 되고 싶기도 했다. 모두가 이름만 말하면 다 아는 사람. 나를 기억하는 사람도 시간의 흔적도 많은 것이 부러웠다.
언제 잃어버릴지 모르는,
나만 간직하는 사진이 아니라, 언제든 검색하면 남아있는 자료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질 수 있길 바랐다. 물론 유명세에는 반대로 잊혀져야만 하는 일이나 기억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단점도 존재는 하겠지만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지 또한 우리의 선택이다.
어쩌면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내가 쌓아온 생각과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든 남아있기를 바라는 최후의 수단 중에 하나 일 것이다.
소중한 나의 생각이 담긴 하루였고, 무엇보다 특별하고 평안하길 바랐던 하루였다. 그런 내가 쌓아온 이 글이 누군가에게도 추억이 되고,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되돌릴 수 없이 주어진대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를 담아야 한다. 내가 시간을 기억하고, 시간이 나를 기억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에게 귀한 당신의 시간을 사용하여 생각해주고, 곤약젤리도 준다. 세심하게 기억해주고, 나에게 말을 걸어주며, 나의 글을 읽어 준다.
오늘 당신의 귀한 시간을 나에게 허락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당신을 제 시간으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 속에서 증명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