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을 받았다.

by Something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청첩장을 주려고 하니 점심을 먹자고 했다. 일정이 촉박해서 나랑 점심 먹고 어디 들렸다가 저녁엔 다른 지인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친구들이 각기 다른 결혼을 준비하지만, 준비할 것이 많아 바쁘다는 것은 신기하게도 같다. 다들 어떻게 그 복잡한 결혼식을 치르는 걸까? 하겠다고 마음먹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큰 행사를 이겨내는 것도 대단하다 싶다.


친구는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로 끝없이 미루다 못해 더 이상 미루지 못하겠어서 한다고 했다.

친구뿐 아니라, 연예인도 그렇고 내 주변도 그렇고 결혼이 퍽 빈번해진 느낌이다. 다들 집에 있는 시간도 많고, 사람 만나기도 쉽지가 않아 결혼이 늘었나 싶다. 평생을 함께할 짝꿍이랑 있으면 시간도 잘 가고, 집도 천국이 되고 즐겁지 않을까.


회사 동기들도 한 달 간격으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제일 나이 많은 나는 유일하게도 내 옆에 아무도 없이 그들에게 축하를 해주고 있었다. 참 생소한 일이었다. 오가는 결혼 준비와 각자의 연인 이야기 속에서 그 어떠한 작은 실마리도 잡을 수 없이 가만히 있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말을 하고 싶은데 할 말이 없던 적도 처음이었다. 무슨 말에 껴들어야 하나 하다가 시간이 끝났었다.

신의 축복

혹은 어떠한 정해진 운명을 통해 수많은 사람 속에서 나의 반쪽을 찾은 일은 축하받아야 일이다. 그리고 아직 찾고 있는 중 또한 그 누군가에게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난 아직 붉은 실로 인연이 이어졌다는 걸 믿는다. 어딘가 이 실의 끝에 이어진 반 쪽이 있지 않을까.

어릴 적엔 붉은 실이 묶여있다는 새끼손가락을 흔들며 이리로 찾아오라고 나름의 사인을 보내보기도 했다. 이 붉은 실이 끊어졌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언젠가 서로가 짠! 하고 알아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얼마 전 결혼 한 동기는 결혼할 인연은 따로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사람과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했다. 그 인연이 붉은 실 끝자락을 들고 천천히 오고 있지 않을까. 적당한 시기에 말이다.


누군가 결혼을 한다고 말을 하면 으레 군더더기 말이 붙는다. 나 역시도 할 말이 없기도 하고 궁금하면 물어보긴 한다. 가장 궁금한 “어떻게 만났니?”부터 시작해서 뭐하는 사람인지, 신혼집은 어디인지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면 서로 비교 아닌 비교가 된다. 집은 전세인지 월세인지. 내가 한 반지는 백금이고, 넌 로즈골드냐 부터해서 결혼식장까지. 누구는 어디서 했는데 밥이 맛이 없었다느니. 여기에다가 뒷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이 곱지 않게 나간다. 그들은 남의 결혼식에 훈수 두는 것이 필수이다. 예단이 어떻고, 신랑과 신부를 언제부터 알았는지 경제권부터 해서 아기 이아기까지. 그렇게 하면 본인들이 조금은 더 높아 보이는 걸까?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한마디 못 해줄망정 가타부타 이상한 소리만 한다. 헛말하는 그들은 말을 지껄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결혼식이 가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참 다양한 에피소드도 많다. 생애 첫 축시를 읽으면서 울컥했던 적도 있고, 신부 측 테이블에 와서 신부 화장이 진하다고 말했다가 놀라서 자리 옮긴 시동생도 봤다. 노래 잘하던 삼촌이 축가 부르다가 망하는 것도 봤었고, 신랑, 신부의 서프라이즈 이벤트는 이제 으례 하겠거니하는 장면들이다.


결혼 준비의 혼란을 뒤로 한채 그날만은,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아름다운 신부와 든든한 신랑이 함께 한다. 그들의 미소는 변함없었고, 서로를 바라보던 따뜻한 시선이 영원하길 빈다. 그렇게 그들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언니, 오빠들의 결혼식을 보며 언제쯤 나도 결혼을 해보나 싶었다. 어느새 나는 친구들을 보내고 동생들을 식장으로 먼저 보내고 그들의 행복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결혼한다는 연락이 오면 제일 먼저 축의금 액수를 생각한다. 축의금을 받고자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연락하는 일은 인터넷의 흔한 이야기다.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슨 결혼할 때나 돼서 연락하냐고. 친한 사이만 초대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런데 지금은 떨어져 있던 시간으로만 우리가 서로의 결혼식을 챙겨줄 정도의 사이었나를 논하긴 어려운 것 같다.

코로나 시국에 연락이 뜸해져 소리 소문도 없이 결혼한 친한 동생들도 있고, 서로 연락은 끊겼지만 결혼을 축하해주고 싶었던 사람도 존재했다. 메신저 배경화면을 보다가 알거나, 우연히 친구들 이야기 속에서 듣다보면 서운함이 든다. 미안해서 연락 안 했겠지만, 우리 사이가 그런 사이였구나 싶다. 난 그래도 이런 연락은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우리가 결혼을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누구는 그들의 재산을 볼 것이고, 외모를 볼 것이다. 누구는 이제 갓 새롭게 시작하는 병아리들이 귀엽기만 한 것이고, 누군가는 그 들이 부럽기도 할 것이다. 크게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나이가 차니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들 한다. 마냥 남일 같았던 결혼이 나이와 함께 성큼 다가온 모양이다. 친구들 만나서 반갑고 맛있는 거 먹어서 좋았던 기억보다는 당장의 결혼 생각은 없더라도 ‘언제 저런 반쪽을 만나 저기에 서보려나?’ 싶은 약간의 헛헛한 마음과 ‘난 더 잘 살 것이다’하는 씩씩한 다짐으로 집에 온다.


오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점심 먹을 장소에 도착했다. 몇 달 뒤 친구의 결혼식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앉아있을까? 혼자여도, 누군가 옆에 있어도 축하해주고 싶은 단순한 그 마음은 변하지 않길 바라본다. 집에 가는 길엔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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