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투스 인연

by Something

가끔 외근 나갈 때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환승을 하는데, 여기는 2호선, 4호선, 5호선이 있어

언제나 엄청난 인파를 자랑한다.


이런 곳에서의 환승은 걷는다기보다는 흘러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오늘도 사람들 사이에서 두둥실~ 물 흐르듯 계단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무선 이어폰이 지직하다가 다시 연결되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사람들 각자에게 각 각 연결된 단 하나뿐인

블루투스 이어폰을.


기계는 다르겠지.

핸드폰과 보이지 않는 선으로 내가 지정한 하나의 기계에 연결되는 블루투스. 얼핏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헷갈려서 꼬일 수도 있을 텐데 똑똑한 스마트 기계는 다른가보다. 오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결된 기기에만 작동을 한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혹은 학생 때도 그랬지만 문득

한 낱 부품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꼭 내가 아니어도 이 자리엔 누구나 앉을 수 있고,

나 역시도 옮길 수 있는 다른 곳 있기 때문이다.


즐거운 회사 생활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마지막까지 맡았던 일을 책임지고 있었을 때 들었다.

“이건 꼭 네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어. 조만간 다른 사람이 대신할 거야. 걱정 마!”


위로의 말이었지만, 허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맞는 말이었다.

꼭 내가 아니어도 여긴 잘 굴러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디 회사뿐이랴.

내가 단 하나의 너의 연인이 안되었어도

넌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네가 아니면 안 된다며 힘들다던 그 사람은 몇 달이 지나 다른 연인과 유학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마음은 어땠나.

잘 지낸다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마음 반,

그리고 역시나.

내가 아녔어도 되었구나 하는 씁쓸한 마음 반.

그때 친구가 그랬다. 그 사람도 살아야지. 그리고 이렇게 아쉬워했을 거면 그때 잡던가.


물론 내가 이렇게 추억할 만큼 잘한 것은 없지만,

‘그냥 너도 내가 아니어도 되었었구나.’하는 생각이 계속 맴도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이건 언제나 그래 왔다. 따뜻한 그대에게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더 행복할 것 같았으니까. 그땐 그게 정답 같았다.


우리에겐 언제나 대체제가 존재한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는 말처럼 언제나 방법이 존재한다. 특히 나는 생활용품이나 방법을 찾을 때 대체제 혹은 플랜 B가 없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물건이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두는 거나, 다른 계획을 추가로 생각해둔다. 그러다 대체제가 더 좋아 보여서 기존 것이 빨리 없어지길 바랄 때도 있었다.


이렇게 정답 없는 세상에서 내가 해제하기 전까지는 충직하게 내 것이라 연결되어있는 블루투스 이어폰이 소중하게 느껴있다. 세상도 빠르게 변하고, 친구도 변한다. 나도 변하고, 내 마음은 하루에 열두 번도 바뀐다. 뭐하나 사더라도 여기저기 사이트를 뒤척이는 것처럼 이 것이 꼭 아니어도 괜찮다는 세상에서 나와 연결되어있는 게 참 고마웠다.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의 고민은 언제까지나 해답 없이 풀어야 하는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매일 겪는 이 문제을 풀어나가다가 답이 없을 땐, 이 말을 기억했으면 한다.


언제 어디서든 인연은 존재할 것이다.

나와 맞는 블루투스 주파수로 연결될 존재가 반드시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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