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돈이 우리를 무너뜨렸다.

나는 쪽팔리는 며느리다.

by 사월의 햇살

“너는 시아버지 칠순에 와서 밥만 먹고 가니?

누나는 음식 결제까지 다 했는데, 너는 선물이랑 몇 십만 원 넣은 봉투 하나 주더라?

내가 누구한테 쪽팔려서 말도 못 하겠다. 너는 시아버지 칠순은 안 중요하고, 니 새끼 돌잔치만 중요하니?”


둘째 돌잔치가 끝나고 돌아가던 차 안, 시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시아버지의 칠순 생신이 1년 전쯤 있었다.

어머님은 “요새 누가 칠순 잔치하냐"라며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하셨고, 그래서 나는 선물과 현금 봉투만 준비해 평범한 생일 식사를 함께했다. 친정아버지 환갑 때도 가족끼리 조용히 식사만 했기에 그때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게 나의 불찰이었는지, 그땐 몰랐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지 1년.

첫 번째 생일은 가족끼리 소박하게 보내기로 했다.

부산에서 인천은 멀고, 코로나 시기였기에 시댁 식구들이 오지 않은 것도 이해했다.

하지만 축하 전화 한 통 없었던 것은 속상했지만, 좋은 날이니 괜찮다고 나 자신을 달랬다. 돌잔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우리 아이의 첫 생일날,

축하의 말 대신 20분간 이어진 거친 말들. 갑작스럽게 폭발한 비난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비난과 서러움 속에 울음을 삼켰다.

하지만 함께 차를 타고 있던 친정 부모님의 표정을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시작된 남편과의 갈등. 그 중심에는 늘 ‘돈’이 있었다.

결혼 준비부터 아파트 분양까지 누가 얼마를 냈는지, 친정의 지원이 얼마나 컸는지, 하나하나 정산처럼 꺼내 들며 남편과 다투었다. 나는 ‘며느리’로서 실망을 드린 적 없다고 믿었지만, 그건 나의 기준일 뿐이었다. 시아버지 칠순에 정성껏 선물을 준비했어도, 그것은 시어머니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고, 어머니에게는 쪽팔리는 며느리였다.


갈등은 점차 부부 사이로 번졌고, 우리는 이혼 서류를 꺼냈다.

변호사를 만나고 오는 길, 하루 종일 걸으며 생각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내가 돈 때문에 남편의 자존심을 밟은 걸까?

경제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어머님께 충분히 드릴 수 있었다면, 관계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돈이 원인은 아닐지라도, 도화선이었음은 틀림없다.

그 끝에, 나는 깨달았다. 돈은 관계를 더 풍족하게 지켜주는 도구이구나...

관계를 망치는 건 감정이지만, 그 감정을 시작하게 한 것은 언제나 돈이었다.


시댁과의 갈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하지만 적어도 ‘돈’이 관계를 파괴하는 일만큼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어버이날 30만 원을 드릴지, 50만 원을 드릴지 계산기 두드리며 고민하지 않는 삶.

아이 앞에서 돈 때문에 싸우지 않는 삶.
남편의 자존감을 지키고, 내가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는 삶.


나는 투자 공부를 시작했다.

주식, 부동산, 경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배웠다. 밤마다 책을 읽고,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차근차근 쌓아갔다. 처음엔 겁이 났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나를 붙잡아 일으켰다.


나는 ‘더 나은 삶’을 원했고, 그게 나 혼자만의 욕심이 아니라 내 아이들의 ‘기본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도 완벽하진 않다. 실패도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오늘도 돈을 공부한다.


나를 지키겠다고. 가족을 지켜내겠다고. 더 이상 돈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다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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