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지 않는 자산은 당신을 천천히 가난하게 만든다.
부산에서 꽤 잘 사셨던 시댁은 1990년 대출 없이 25평 아파트를 취득하셨고, 35년이 넘게 그 집에서 살고 계신다.
어머님은 종종 자랑처럼 말씀하신다.
“그때 필요한 건 다 백화점에서 샀다. 태화 백화점 모르지? 부산에서 제일 큰 백화점이었어."
하지만 요즘은 시장에서 꼭 필요한 것만 사신다.
시간은 흘렀고, 세상도 바뀌었다.
'집을 한 번만이라도 갈아타셨다면, 지금보다 훨씬 여유롭게 지내실 수 있으실 텐데…'
시댁 옆으로 만리장성처럼 둘러싸인 고층 아파트 단지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옆 단지 고층 아파트는 시댁의 40년 된 집 보다 5배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시아버지는 부산 신발 산업의 중심에 계셨다. 1980~90년대, 부산은 세계를 누비는 신발의 본고장이었고 아버님은 꽤 많은 직원을 두고 사업을 하셨다. 하지만 중국 제조업의 부상은 그 부흥을 오래 허락하지 않았다. 지속될 것 같은 성공은 무리한 확장을 진행하였고, 사업은 결국 부도가 났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산업은 무너졌고, 변화에 올라타지 못한 자산은 멈췄다.
시댁에 처음 인사드리러 갔을 때, 4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에 조금 당황했지만, 호탕한 어머님과 환대에 '사람 좋으면 됐지'하며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큰 기대가 없었기에 결혼 준비와 신혼집 마련도 내가 자금을 더 보탰다. 그리고 알게 된 시댁의 부도 이력과 시아버님의 신용 불량 상태.
생각보다 상황은 훨씬 불안정했다.
1년에 10번 있는 시댁 제사.
갈 때마다 어머님은 습관처럼 말씀하신다.
“사과는 한 개에 거의 만원이고, 시금치도 금값이야. 고기는 또 왜 이렇게 비싸냐.”
익숙한 대화지만 이상하게 내가 죄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가벼운 넋두리이지만 묘한 압박처럼 느껴졌다. 제사 때마다 넉넉히 드리고 싶지만, 우리는 여전히 대출 이자를 갚고 있고 두 아이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버겁다. '저희도 사는 게 빠듯해요.'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 시절 부동산 투자는 부의 지름길이었다.
현금은 30년 전 그대로 통장에 있지만, 세상은 그 사이 몇 배가 올랐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오르지 않은 자산을 가진 사람만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다.
시장 물가를 걱정하시는 어머님의 말씀은 단순한 넋두리가 아니라, 기회를 놓친 시간과 자산에 대한 한숨처럼 들린다. 한때 부를 가졌던 사람도 그 부를 유지하는 법을 몰랐다면, 변화에 맞춰 움직이지 못했다면, 멈춰버린 자산과 함께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자산에는 방향이 있다. 단지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어떤 자산을, 언제, 어떻게 갖는가에 따라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어느 시대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무른다는 건, 가장 조용한 방식의 손실 일지도 모른다.
가난은 멈춤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