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름없는선인장 May 01. 2019

오늘도 난 평행선을 달린다

40대 여자 팀장의 하루 ep18

오후 내내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 왔다.

그녀는 끝내 마지막 인사도 하지 않았다.



1. 의도하지 않은 마지막 날


하루 전에서야 그녀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란 걸 알았다. 그것도 다른 사람을 통해.


오전에 마지막 보고서 초안 작업을 부탁한 이메일도 목요일까지 회신을 요청했는데 그때도 나머지 이틀을 연차 처리한다는 말도 없었다. 그리고 그 이메일을 받은 후 한 30분 후에 휴가원을 말없이 올린 그녀. (또 후통보? 보고서는??) 한 달 전 잔여 휴가 처리를 할 거냐고 물었을 때 절대 안 한다던 그녀.... 에혀..... 마지막이다... 그냥 내버려둔다.


이걸 들은 다른 팀원의 반응

a: ’ 연차를 말을 안 하고 썼어요? 헐?...’


그러나, 그녀가 팀장인 나에게 사전에 말하지 않고 항상 난 통보만 받는다고 이야기하자 놀라지만 말을 돌리며

a: ‘ㅋㅋㅋㅋㅋㅋㅋ ’


만 메시지 창에 메아리친다.


그들 팀에선,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은 결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 팀원이기에, 그녀와 마지막 날 점심을 같이 먹어도 되냐며 양해를 구한다. 그러라고 했다.


1-1. 그녀의 마지막 카톡


회의 중인데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그 일이 있고는 처음이다. 할 일도 없는데 30분 일찍 퇴근하면 안 되냐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료 넘기라고 한 거는 다 했다고 한다. 그러라고 했다.


퇴근 시간이 넘어 회의가 끝나 자리에 왔다. 남아있던 팀원에게 그녀가 몇 시에 갔냐고 물었다. 한 시간 전인 5시에 갔다고 한다. ‘아... 또...’ 그렇구나 했다.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영화표 예매 시간 때문이라고 했단다. 마지막이니 뭐... 내가 여기서 감정적일 필요가 있을까... 그녀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튀는 행보를 남기면서도 조용히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별 인사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윗 분들에게 인사는 했는지, 이메일로 인사는 했는지 모르겠다. 나에겐 튀는 행동이지만 사무실에선 그다지 주목을 받지 않는 그녀가 부럽기도 하다. 이렇게 쉽게 편하게 마음대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2. 실무자들의 업무 인수인계


생각해 보면 한 달 전 서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날, 그녀가 나에게 할 거라고 했던 일들은 처리된 게 없다.


분기 보고서 ; 그렇게 큰소리치며 ‘그까짓 거 해서 드린다.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의 결과물은 오지 않았다


업무 인수인계 후 정신없는 b 양


b: 저도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기록해야 하는 건가요? 아마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그녀도 안 한 게 아닐까요? (하하하, 네.... 그녀가 분석 보고서를 못 만든다고 하여 유료 서비스를 보고도 안 하고 자진 구입, 도입한 1인이라고 했고, 왜 유로 서비스를 쓰냐고 하자, 야심 차게 국가별로 보고서도 만들어주고, YOY도 된다고 했다는 그녀다. 하지만 몇 달 하고는 “누가 이 보고서를 봐요? 아무도 안 보는 걸 왜 해요? 국가 보고서는 요청하면 해줄래요...’... 그럼 유료 서비스는 왜 쓰지?)


그럼 이야기를 하자 b는 당황하며,


b; 제가 그녀랑 업무 스타일이 비슷해도 제가 보고를 안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란다.  


업무 인수인계를 하면서, 두서없이 일했던지라, b는 업무 인수인계를 받을 때마다 넋이 나간 표정이다. 그럼에도 뭐가 문제냐고 하면,


b: 업무 인수인계하는데 그녀가 너무 힘들어해서 한 번에 못했어요. 일이 많은 거 같아요....(어떤 건에 대해서 업무 인수인계받았냐고 확인하면) 아뇨. 그 건에 대해선 아무것도 주시거나 말씀해 주신 게 없어요. (물어서 받으라고 하면) 팀장님이 해주시면 안 돼요? 한다.


그녀 눈치만 보는 실무자들...

다들 앞뒤가 안 맞는 말들만 왔다 갔다 한다.




3. 팀장에게 보고하는 날 정하기


사원이던, 대리던, 과장이던 본인이 하는 업무의 양과 기한 내 조절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닌다. 기한을 주면 기한 내에 하다가 당일 날 오후쯤에야 와서 못한다고 하지 말 것. 적어도 이틀 전에는 진행경과 보고 못한다고 하자라고 난 기준을 정한다.


그러면 우리 팀에 갓 조인한 b는,


b: 저보고 자꾸 알아서 기한을 정하라고 하지 말고 정해주시면 안 돼요? (그래서 정해준다. 근데 막상 기한일 되면 절대 다 못한다고 한다. 다른 ‘중요한(?)’ 급한 일처리 때문에.... 그게 뭘까요?) 그리고 기획을 해오라 하지 말고 그냥 짜서 시켜주세요. ( 데쟈뷰....... 휴직한 그녀도 비슷한 소릴 했다. 단지 한 명은 대리, 한 명은 과장. 대리는 내가 봐줄 수 있다. 과장은 이야기가 다르다. )


하지만 마케팅 실무 경험이 없는 b는 비록 전임자가 정리된 게 없고, 보고된 게 없고, 이유 없이 진행된 일들을 한 달간 업무 인수인계받으며 그녀 스타일이 자기와 비슷하며 그래도 배울 게 많은 것 같은데 석 달은 같이 하고 일을 배우고 싶었는데 아쉽단다.


b: 팀장님은 관리자시니까 실무 한 그녀보다는 모르실 거 아니에요. 그래도 그녀는 1년 하셨으니 많은 걸 알지 않겠어요? 그녀도 정말 아는 게 많아요!


그래요... 근데 전 지시하면 들은 것도 없고, 본 것도 없고, 그녀가 했다는 ‘그 일’들이 뭔지 모르겠네요. 광고비 아무 기준 없이 집행하고 무조건 잘 나왔다고 하는 거? 노출만 잘 나오면 좋았다고 하는 거? 그러다 클릭해서 실질적인 결재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면 그제야 노출은 필요 없고 우리는 랜딩페이지로 이어지는 걸 힘써야 한다고 한 거?... 이쪽 일은  처음인데 교육도 한 번 듣고, 추가적인 서비스나 기능, 분석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많이 안다고? 나뿐만 아닌 다른 팀원들도 그녀가 어떤 기준으로 일하는지 모른다고 매번 불만을 토로했다는 거? 10년이 넘는 경력직 전문가로 입사했으면 그에 맞는 업무를 해야 한다는 기대는 내가 너무 한 건가.... 대리 앞에서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했나 싶다.... 그래 이제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다.



4. 자율적 업무를 원해요.


우리 모두 한 때는


“내가 이렇게 묵묵히 일하면 알아줄 거야. 왜 모르지?”라는 의문을 가진다. 그러다 경력이 쌓이면 직장 생활에서 자기 밥그릇 사수는 본인의 몫이고, 자기 업무 성과의 어필도 본인의 몫이고 능력이어야 생존함을 알게 된다.


단지 떠나간 그녀는,


c: (주간이나 월간 계획표 가져오라고 하자)  저는 이렇게 팀장님에게 보고하는 게 싫어요. 제가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누가 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 같아서 싫어요. (업무 계획표를 짜서 일을 한 적이 없어 보인다)


그러다 어떤 보고 날이 돼도 보고서는 완료가 안 돼서 일이 터지면 나에게 와서. “저 못하겠어요. 이 일 좀 처리해주세요. 그런 게 팀장님이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란다. (근데 중간에 일처리 이렇게 될 때까지 경과보고는 안 하니? 어떤 식으로 이메일이 나갔는지, 본인이 중간에 어떻게 처리하다 이리됐는지 그녀는 업무 처리 시 위에 감시받는 게 싫다며 나를 cc하지 않는다.)




이제 다른 팀원들과 합을 맞추는 기간이 필요하고, 그녀가 없어도 다른 일들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여기에 이렇게 그녀와의 일들을 적는 것도 의미가 없지만, 적어도 내가 겪은 시간들이, 내 감정이 이해받고 인정받을 수는 없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약자(?)에게 가질 그녀에 대한 안쓰러움(다른 동기를 보고는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는...) 팀원이 힘든 건 어느 정도 팀장의 탓이라고 볼 사람들...


그 속에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 혼자 평행선을 달리는 기분이다.


그들은 그 길을 거쳐간 팀장들이어도

“팀장이 알긴 뭘 알아, 일은 우리가 다 하는데...”라는 인식을 깔고 간다.


팀원들이 팀장을 이해할 수 없는 걸까...


어디까지 내가 관대해야 할까?

난 이런 막연함이 싫다.









이전 01화 애초에 버려진 리스펙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