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 여자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부서 이동을 하고 1년이 흘렀고,
나는 또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업무 R&R변화를 겪었다.
내가 가진 업무의 성과나 능력은 또다시 무시되었고, 나는 그저 팀에서 하라는 업무를 하고 있었지만 그게 이제는 내 발목을 잡았다.
30프로 비중으로 하던 내 전문영역인 마케팅 업무마저도 다 내려놓게 되었다.
같이 함께 일하던 대리는 말로는 표정으로는 미안해한다지만 내심 본인 혼자 하고 싶은데로 마케팅할 수 있겠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매번 하나만 하고 싶다던, 내심 혼자 하고 싶은데로 하고 싶었던 업무 스타일로 할 수 있을테니.
난 그렇게
또 다시
또 다른 버전으로
위에서 밀려났다.
이번에도
나에겐 옵션이 없었다.
언 15년 이상 마케팅만 했지만,
경력이 길어지고 나이가 들수록
여기저기 치이는 마케팅부서가, 업무가
진절머리 나게 싫기도 했다.
작년 해외에서 국내팀으로 옮겼을 때도
이 부서에 와서도 딱 1년만 해보자,
딱 1년만 실무로 버텨보자였지만
1년 동안 하던 일마저,
마케팅 경력 입사자임에도
이렇게 뺏길(?)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이건 팀장에서 내려오던 것과는 또 다른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직무적으로니까.
대놓고 일을 누가 더 잘하네 못하네가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전문성으로 누가 더 적합하나 보다는 지금은 그냥 많은 크리에이티브와 기획, 빠른 실행력이 더 요하는.자리일 것이다. 딱 1명으로 모든 온라인 마케팅을 하라고 하니 그것도 대단한 결정이다 싶다.
전문가라고 데려와서 기존에 대리가 혼자 하던 고유 업무를 나눠줘야 했던 대리는 내가 팀에 왔을 때 날 반갑지 않아 했었다. 그에겐 다행으로 나는 계속 새로운 업무를 맡아 마케팅 비중이 점점 심할 때는 9;1 까지 축소되었고, 제품 출시하는 PM업무가 주가 되었다.
난 난생 처음 하는 일들로 어느 새 모든 일에서 ‘손 많이 가고’ ‘모든 업무 프로세스를 물어물어 해야 하는’ 신입사원 같은 차장으로 포지셔닝 되었다. 그럼 어떠하리? 내가 모든 걸 잘 할 수는 없다. 지난 1년간, 난 ‘일 안하는 차장’들이라는 말은 듣기 싫어 정말 이 악물고 후배님들을 모시며 물어 물어 일을 했다. 그러면서 경력은 길지만, 이 없무는 신입인지라, 일의 질적인 성과를 낼 수 없음에 낙담하고,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 내가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 없음을, 그리고 그렇게 기다려주지도 않는 다는 것을 알았고, 더 이상 나는 일이 주는 행복이라던지, 위안이라던지 식으로 직장에서의 성과와 결과가 내 자신을, 내 인생을 판단하게 할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더 이상 의미 부여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아무리 30프로지만 예전만큼 마케팅 업무도 손을 쓸 수가 앖었다. 열정도 사그라졌다. 상대적으로 제품을 담당하지 않는 그가 실무를 많이 할 수밖에 없던 구조. 나는 PM일로 허덕이면서도 내가 제일 잘 알고 편한 온라인 마케팅 직무군이 좋았다. 틈틈히 이렇게라도 같이 해주며, 알려주며, 중간관리자로서 기타 의사결정, 방향성, 그 외에 대리가 실수하는 것들을 쳐내 주기 바빴지만 만족했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실무를 모르시는 팀장님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고, 내가 정말 아무 것도 많이 안 하고 대리가 다 했다고 생각하고 계셨다.대리는 항상 힘들다고 팀장님에게 달려가 징징거렸고,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 크게 이야기했다. 난 그저 이무도 알아주지 않은 묵묵한 일을 했고, 남 좋은 일만 또 시킨 거였다.
그렇게 토 나올 것처럼 일하고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하며 1년이 흘렀고 나는 (온라인) 마케팅보다는 PM 일을 더 잘 해내고 있지 않냐며 이제 축소된 (온라인) 마케팅을 둘이 아닌 혼자 해야 하니 내 업무에서 마케팅 업무를 덜어주겠단다. 어떻게? 이제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내가 안제 마케팅 업무를 덜아달라고 했나? PM을 빼 달라 했지…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이제는 다시 잘 하던 일 하라고, 전담시켜줄 주 알았는데...
팀장님은 자신은 영업츌신이라 (온라인) 마케팅 업무는 1도 모르고, 정확한 업무 비중도 모르지만 그냥 대리에게 업무를 주는게 여러 유관부서와 대리가 광고 건으로 여태 일한 게 있으니 담당자를 바꾸는건 아니라고, 이게 맞다고 하셨다. 난 속으로는 대리가 실무 일을 시키시기 편해서인가 싶어 그냥 면담 내내 듣고만 있었다.
듣고 있지만 이제 마케팅 업무가 산으로 가고 또 무시당하고 여기저기 치일까 우려스럽기도 했다. (이런 게 남은 마케터의 자존심 -_-)
마케팅 성과분석, 효과 측정 틀도 만들어 놓지 못해 없는 상태에서 위에서 푸시하는 것은 이제 모든 걸 숫자로 보고하고 증명해야 하는 체계로 변했는데, 대리는 그 업무를 깊게 한 적이 없다. 우리 부서에서 쓰는 돈 들에 대한 효율성 분석을. 마케팅 캠페인 결과 분석을. GA분석도. 혼자하기도 벅차거니와 중요한 업무라 판이 커질 것 같은데도 팀장님은 대리를 선택했다.
본인이 마케팅 천재라고 회사에 농담 반 진담 반, 항상 자랑했음에도 막상 이제 오롯이 혼자 업무를 하고, 관심도 받을 걸 생각하니 두려웠나보다. 날 불러서 매일 30분마다 자기한테 온라인 마케팅을 가르쳐 달라는 둥, ROAS를 알려 달라느니 나에게 은근슬적 비공식적으로 봐달라고 했다. 하지만 팀장님은 업무의 전문성 기준으로 업무 담당자를 선택하지 않으셨고, (그럼에도 외부에는 내가 대리에게 밀린 게 되어버리고, 그가 더 일을 잘해서 혼자 담당이 되었다고 말이 돌 것이다) 대리를 택한 이상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관여하지 않을 예정이다. 업무의 전문성을 보고 판단하지 않으셨는데, 왜 내가 비공식적으로 계속 협조를 해야 하는거지? 일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고? 덕도 못 보는데…어느 것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여태가지 실무적으로 준 도움이 고맙지 않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다들 말로는 위하는 척하며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맡고
나한테는 하기 싫은 기존 업무를 계속 하게 하면서
어느 새 나는 어떠한 포지션에서도 애매하고
강점이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서로 업무스타일이나 방식에 대해 이간질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이 무능력하다, 업무 방식이 맘에 안든다며 저 사람은 본심은 저게 아니다는 뒷 말들이 너무 많았고,
이런 문화에선 나 또한 어떠한 형태로 이상한 사람으로 포장되어 뒷말들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본인이 원하는 게 있으면서도 양보하는 척 하며 나를 위하는 척 하면서도 본인이 불리할 때만 선임이다, 차장님이다 라며 나를 팔아서 자신의 모든 걸 정당화하거나 내가 다 책임지게 하는 걸 보고 황당했다. 미리 얘기도 없이.
그냥 한 순간에 다시 가스 라이팅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수근덕 거리며
비밀이 1도 없는 회사
서로 말이 돌고 돌아 와전되는 말들
듣고 있는 것도 지치지만
알지 못하고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도 슬프다.
모든 면담 후 대리는 따로 커피나 마시자더니
자기가 곧 다른 부서에 갈 수도 있으니
나보고 이번 결정으로 너무 낙심하지 말란다.
다시 내가 자기가 없으면 지금 하는 온라인 마케팅 업무를 혼자 다 할 수 있다며.
화가 나지, 낙심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왜 어느 누군가 제대로 해놓지 못한 일들을 다시 받아서 정리할 거라 생각하지?
내가 원치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 뽑을 수도 있다.
지금도 1년 내내 전문가임에도 안 시키다가
대리가 만일 부서 이동을 한다고 하면
내가 얼씨구나 감사하며 해야 하는건가?
그저 지금 다가올 혼자 다 해야 하는 업무 부담감에
부서 이동으로 도망가고 싶어한다는 게 뻔히 보인다.
그럼에도 본인이 사라져 주는 것을 기대하라거나 감사해하라는 톤의 말을 들으니
대리가 평상 시에 새삼 뭔가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구나 싶었다.
이번 기회에 애증의 관계였던 마케팅을 내 커리어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
뭔가 자꾸 조직에서 밀리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그냥 온전히 일로 평가받고, 성과로 평가받는 부분들이 아닌 이 조직에서의 이런 감정적이고 이해 안 되는 개인적 말들,
주관적인 업무 평가와 판단이, 또 다시 이런 결정이 내려진다는 게 씁쓸하다.
내가 무슨 헛된 희망을 품었던 건가.
내리막길은 준비되어도 힘든건가.
마음이 괜찮지가 않다.
자존심이 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