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은 익숙해졌고, 드디어 연주가 되었다.
물집이 가라앉고, 손끝이 단단해졌다. 안쪽 살이 쓸려서 찢어질 듯 아프던 그 구간을 지나오니, 프렛 위에서 손끝이 미끄러지지 않는다. A, E는 이제 손가락이 먼저 간다. G, C, D에서는 여전히 말을 잘 안 듣지만... 그래도 골무를 낀 기분이라 마음이 든든하다. 줄을 누르면 '찡'하는 소리가 아니라 제법 '퉁'이 들린다. 이게 이렇게 기분 좋은 소리였나.
학원에 가서 평소처럼 코드 연습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느닷없이 물었다.
"연주하고 싶은 노래 있어요?"
"아... 저는 김광석 노래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아이코. 다른 노래요. 난 김광석 별로 안 좋아해요."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강하게 와닿았다. 통기타의 대표적인 가수를 말했을 뿐인데, 단칼에 "별로"라니. 나보다 앞선 세대를 살아온 분이지만, 그래도 김광석의 노래는 제법 들었고, 나 역시 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좀 섭섭했지만, 그분만의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작가는 책을 따라가듯, 가수는 노래를 따라간다고 하잖아요. 맨날 슬픈 노래만 부르면, 듣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속상해져요."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겠네요." 그리고 슬쩍 말을 틀었다.
"그럼... 임영웅은요? 그의 노래, 기타로 칠 수 있어요?"
"그럼요. 잠깐만요."
이 시대의 국민가수, 임영웅. 그의 노래 하나쯤은 알아두면 명절에 양가 가족 모임에서 기타 들춰메고 함께 부르며 가족 단합이라는 미션도 이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임영웅도 되나요?" 하고 꺼냈는데 내가 그 이름을 말할 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곧장 사무실로 들어가 프린터 앞에 섰다.
잠시 후, 가지고 있던 악보 중 하나를 꺼내 프린트하더니 툭 하고 내 손에 건넨다.
기타 악보라는 걸 처음 받아봤지만 크게 다른 건 없었다. 오선지 위에 코드가 적혀 있고 그걸 보며 따라 치면 되는 구조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건, G, C, D 코드가 너무 많다는 거다. 익숙하지만 헷갈리는 그놈의 삼총사.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동시에, "잘하고 싶다."는 마음도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두 마디씩 끊어 진도를 나갔다. 그 와중에 나는 코드 이름을 낮게 읊조리고, 손가락을 겨우겨우 옮겨가며 끊기지 않는 연주에 집중했다. 오른손은 '다운-업-다운-업...'을 마치 마법 주문처럼 되뇌는 수준이다. G에서 C로 넘어갈 땐 늘 막히고, 늘 미끄러진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돌아가지 않는다. 그게 오늘의 목표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몸은 마치 운동장을 전력 질주한 듯 힘이 쭉 빠졌는데 희한하게도 머리는 맑았다.
G에서 C로 전환이 딱 한 번 매끄럽게 넘어간 순간, 그 짧은 쾌감이 머릿속에 촘촘히 남아 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이 툭, 한마디 던졌다.
"그 곡으로 다음 달에 공연 나갈 거예요. 연습 계속하세요."
"네...? 지금요? 제가요?"
내가 아는 모든 핑계가 동시에 떠오른다. (허리 통증, 거북목, 생업, 가족, 아직 한 달도 안 됨, 새끼손가락의 부상??) 그런데 이상하게도, 핑계보다는 설렘이 앞선다. 실없이 웃다가 정신이 들어오면 또다시 손이 조금 떨리고, 입 안이 마른다. 그래도 웃음이 난다.
집에 와서 가족에게 말하니, 반응이 제각각이다.
"아빠, 진짜? 무대에 서?"
"곡은 뭐야?"
"아니야, 아직 정해진 건 아니야." 나도 안다. 이건 거대한 무대가 아니다. 동호회 합주, 작은 무대, 어쩌면 카페의 토요일 저녁. 그래도 내겐 공연이고, 끝까지 가보겠다고 마음먹는 첫 약속이다.
밤에 다시 기타를 든다. 이번엔 네 번째 박자가 아니라 세 번째 박에서 먼저 준비한다. 손가락을 미리 떠나보내는 기분. 박자를 잃지 않으려 입으로 중얼거린다. "하나, 둘, 셋, 넷" 한 번은 실패하고 한 번은 성공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정말 아름답게 이어진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그 노래를 '완곡'했다. 비록 나 혼자 엉터리였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더 하고 싶어도 멈춘다.
이 기분을, 이 속도를, 이 리듬을 내일로 가져가야 하니까.
선생님 말대로, 슬픈 노래만 고집하진 않기로 했다.
희망이 박자에 얹히면, 손도 따라온다.
그렇게 내 첫 공연을, 한 마디씩 앞으로 당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