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비로소, 우리 것이 되었다

1톤의 게으름과 잔디밭

by 피터의펜

내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았던 보도블록과 벽돌, 그리고 들쭉날쭉 자라다 말고 죽어버린 잔디를 모두 걷어낸 뒤에야, 비로소 공터 같은 흙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땐, 마당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먼저 들떴다. 삽을 들고 땅을 고르고, 꽃을 심고, 돌을 하나씩 걷어내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집의 주인이 되고 나니, 이상하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과는 달리 손은 무겁고, 하루는 짧았다.


해야 할 일도 많았고, 사야 할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 나는 그렇게 부지런한 성격이 아니었다.


주택을 고를 때 마당 정리가 잘 된 집도 있었고, 창고처럼 널브러진 집도 있었다. 그땐 아파트에만 살아봐서, 그런 마당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 좋은 마당을 저렇게 방치할까?' 의아했는데... 며칠을 살아보니 알겠다.

그들은 게으른 게 아니라, '엄두'가 안 났던 거다.


나도 이 집에 오자마자 1톤 트럭을 불러 잔해와 쓰레기를 비워냈다. 그리곤 당연히 생각했다. '이제 초록 잔디만 깔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쓰레기를 다 치운 마당을 마주했을 때 느낀 감정은 말끔함이 아니라 불편함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흙바닥이었는데, 정작 그 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몇 번만 삽질해도 손바닥만 한 돌덩이가 우르르 쏟아졌고, 어디에든 뿌리내릴 것 같던 꿈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이 돌덩이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이 정원의 첫 주인은 누구였을까?'


원망처럼, 궁금함처럼, 그 질문들을 흙 속에 던져 넣으며 삽질을 했다. 땅은 생각보다 깊었고, 돌은 생각보다 크고 많았다. 한참을 퍼낸 다음 돌을 들어낼 땐 뭔가 오래된 감정 하나를 들어 올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돌이 아니라, 이 마당에 쌓여 있던 지난 시간 같았다.


처음의 계획은 이랬다. 돌은 솎아내고, 흙은 부드럽게 만들고, 그 위에 잔디를 깐다. 끝.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단단한 돌 하나를 뽑아내는 데 몇 시간이고, 금세 온몸이 녹초가 되었다. 해도 해도 진도가 나가지 않아 답답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마당 정리가 아니라 공사장의 막일과도 같았다. 그 정도로 힘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허비하다 결국 진짜 움직이게 된 건... 엄마의 '단호한'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주말에 가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니?"


상냥하지만 타협 없는 말투. 묻는 것 같지만 사실상 선전포고다. 우리가 정리되길 기다리던 그 마당에, 예정보다 빠르게 손님이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진지하게 마음을 먹었다.


수요일 저녁, 다급하게 삽을 다시 들었다. 돌을 골라내고, 흙을 부드럽게 고르고, 공마대에 담아 트럭에 실을 양을 채웠다.



우리만의 기준은 '한 뼘'이었다. 그 깊이까지만 돌을 걷어내고, 그다음은 고운 흙으로 덮었다. 결국 금요일 밤, 폐기물 수거가 끝나자 마당이 비로소 '우리의 마당'이 되었다.


텅 빈 흙바닥이 처음으로 '여백'처럼 보였다.


토요일 아침, 급히 주문한 잔디가 도착했고 우리는 그 초록의 조각들을 마당에 펼쳐놓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 좀, 사람이 사는 집 같아졌네."


그날 오후, 엄마와 아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당에 펼쳐진 잔디를 보고 감탄하며 한참을 웃었다.


물론 잔디는 아직도 군데군데 틈이 비어 있고, 어디선가 또 돌이 솟아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아침 마당을 돌며 구석구석 살펴보고 하루를 시작한다.


비싼 견적 때문에 업체에 맡기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해보자고 결심했는데 막상 잔디까지 깔고 나니 직접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애정 없이는 이렇게 덮여있는 흙을 갈아엎고 돌덩이를 들어낼 계획 따위 하지 않는 게 정상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 이 마당은 우리 삶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됐다. 잔디가 초록빛으로 공간을 덮으니,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아늑하고 평온한 기운이 번졌다. 꽃과 나무를 심어 여러 색을 담은 정원을 가꾸는 게 다음 계획이지만 잔디만 깔린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우리 손으로 계획하고 직접 가꿨다는 사실이 마당에 더 큰 정을 붙게 만든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우리만의 첫 마당이다.

keyword
이전 09화낯선 집에서의 첫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