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집, 열린 마음

아파트의 소음에서 주택의 고요로

by 피터의펜

갈수록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고는 하지만, 오늘만큼은 정말 눈을 의심했다. 신문을 펼치자 '앞집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나오지 말라'는 쪽지가 붙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문장 하나가 오래 머물렀다.


... 눈앞에 그려졌다.


엘리베이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두 집, 문 하나 차이로 붙어 있는 현관. 그 좁은 공간에서조차 서로의 기척이 불편해진 시대라니. 참, 낯설고 씁쓸했다.


예전이라면 같은 복도에 사는 이웃끼리는 가족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웃사촌'이라 불렀다. 현관 앞에서 우연히 만나면 "식사하셨어요?" 한마디가 인사였고, 가끔 반찬을 나누기도 하고, 아이들끼리 놀다 울면 같이 달래주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서로의 인기척이 곧 '경계 신호'가 되어버린 시대다. 이웃의 존재가 반가움이 아니라 피로가 되는 세상인 거다.


주택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나도 그 안에서 살았다. 40년 가까이 아파트의 구조 속에서, 층간 소음과 생활 소음에 예민해진 삶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공간보다 관계에서 오는 피로였다.


아파트에 살 때, 우리 집 식탁 의자를 끄는 소리에도 나는 습관적으로 심장이 철렁하곤 했다. 아이들이 소파에서 깔깔 웃으면, 그 웃음이 곧 누군가의 불만이 될까 봐 입을 막아 조용히 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다. 집 안에서조차 눈치를 봐야 했던 그 시간들.


하지만 주택에 와서 처음 느낀 자유는 의외로 사소했다. 식탁 의자를 밀어도, 아이들이 뛰어도,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마음껏 기뻐하고 웃어도 부담이 없다. 벽 하나 너머로 생생하게 느끼던 타인의 소리가 이제는 들리지도 않는다.


"아, 이제야 내 집 같다."


물론, 이곳이 모든 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난 세상은 아니다. 울타리 너머엔 여전히 이웃이 있고 서로의 삶이 닿는 부분은 어디에나 있다.


다만, 그 거리감이 달라졌다. 이제는 누군가의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먼저 귀를 연다. 주택에 와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아마도 나의 마음일 것이다.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예전 같았으면 신문기사 속 그 쪽지를 비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그 문장 속엔 불편한 세상만이 아니라 지쳐버린 마음도 함께 담겨 있었을 테니까.


이제 나는 아침마다 마당에 나와 잔디를 쓸고 커피 향을 맡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울타리 너머의 인연은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마음의 문은 닫지 않고 살고 싶다.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소음에서 고요로.

갈등보다는 이해를,

상처보다는 회복을 택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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