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평의 텃밭, 그리고 나의 첫 당근

올해 농사는 망했지만

by 피터의펜

마당이 있는 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어쩌면 가장 공들였던 공간은 바로 3평짜리 텃밭이었다. 무언가를 심기엔 크지 않지만, 막상 관리하려 마음먹는 순간 작지 않은 크기였다. 텃밭이란 게 별다른 게 아니다. 마당에서 데크가 깔리지 않은 곳, 잔디로 덮이지 않은 그곳이 바로 텃밭이었다.


무엇을 심을까 고민하다가 가장 먼저 선택한 건 당근이었다. 보통 3월 말에서 5월 말 사이에 파종한다고 하니 시기도 얼추 맞았다. 조금 늦은 감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때 나는 당근에 꽂혀 있었다.


사실 그 시작은 꽤 엉뚱했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당근과 인연이 없고, 농사를 짓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구좌당근'이라는 이름만 보면 괜히 반가웠다. 아마도 이유는, 강아지와 함께 다니던 제주 여행 때문이다.


우리는 해외 대신 늘 국내 여행을 다녔다.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숙소가 많지 않아, 주로 제주 구좌읍에서 시간을 보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보름.


그곳에서 머물던 시간은 내게 '제주 = 구좌'라는 공식으로 남았다.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마트에서 '구좌당근'을 보면 꼭 사야 했다. 그 이름만으로도 제주 바람과 바다 냄새가 스며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이유 없는 이끌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연고도, 아무 이유도 없이 당근을 택했다. 그저 좋아서, 씨앗을 뿌렸다.


처음에는 씨앗 봉지 뒷면의 설명서를 꼼꼼히 읽었다.


줄 간격 20cm, 파종 깊이 1cm.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피터의펜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일상을 관찰하고 생각하며 글쓰기를 반복합니다.

47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3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