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도 자라는 집

완벽 대신, 살아 있는 초록을 택했다

by 피터의펜

처음엔 우리 집에 잔디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희귀 식물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잔디일 뿐인데 말이다.


아침이면 잠도 깰 겸 우리는 마당으로 나가 잔디 위를 천천히 걸었다. 그럼 강아지도 따라 나와 잔디 위를 뛰고, 볼일을 보고, 한참을 구르다 들어왔다. 커피 한 잔을 내려서 잔디 위에 앉아 있으면, 그 향이 흙냄새와 섞여 코끝으로 밀려왔다.


그게 그렇게 좋았다. 별것 아닌데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잔디지만, 그 잔디 위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집에 마당이 생기면 이런 행복이 찾아온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잔디는 삶의 일부처럼 스며들었다. 강아지는 햇살이 드는 곳마다 자리를 옮겨가며 낮잠을 자고 아이들은 잔디 위에서 물장난을 하며 논다. 예전 같았으면 "쓸데없이 논다"며 한마디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 그저 흐뭇하다.


자연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며 이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50725_134741.jpg


퇴근 후에도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마당이다. 지친 몸을 의자에 기대고 잔디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피로가 풀렸다.


"그래, 이게 바로 우리가 원하던 삶이야."

그렇게 우리는 꽤 오랫동안 그 초록빛 위에서 평화를 누렸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잔디 속에 낯선 녀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잔디보다 색이 짙고, 결이 거칠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풀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20251011_155603.jpg


'잔디니까 다 풀이지 뭐.'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눈 깜짝할 새 마당 한편이 온통 잡초로 뒤덮였다.


나무 옆에도, 꽃 옆에도, 돌멩이 사이에도 잡초가 고개를 내밀었다. 햇빛조차 닿기 어려운 틈에서도 자라나는 걸 보고 '생명력 하나는 대단하네' 싶었다.


20251008_124840.jpg


그래도 나무 곁에까지 자라나는 건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본격적인 '잡초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코팅 장갑을 끼고, 눈에 보이는 잡초란 잡초는 모조리 뽑았다. 잡아당기면 '쑥'하고 빠지는 그 감각이 묘하게 시원했다. 깔끔해진 마당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자연과 싸워 이긴 인간의 승리다!"


그날, 마당은 다시 평화를 되찾은 듯했다.


...

...

...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똑같은 자리에 또 풀이 올라왔다. 이번엔 갈대나 화초일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역시나 잡초였다. 엊그제 뽑았던 그 녀석이 "나 없이 심심했지?" 하고 비웃는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는 조금 더 진지해졌다. 집 안의 농기구를 모두 꺼내 들고 이번엔 깊숙한 뿌리부터 뽑아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잔디와 나무가 조금 다칠지도 몰랐지만 개의치 않았다. 썩은 부분을 도려내듯 모조리 들어냈다.


그렇게 며칠을 씨름했지만 결국 잡초는 다시 자라났다. 그 질긴 생명력 앞에서 나는 결국 삽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잡초는 정말 '나쁜 존재'일까? 제초제를 뿌리면 잔디도 함께 죽을 테니 완벽한 해결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쩌면 그들도 그저 뿌리내릴 자리를 찾다 보니 우리 마당까지 온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초록빛이라는 점에서는 잔디나 다를 게 없었다. 태초부터 나쁜 식물은 아니라는 거다.


그저 이름이 잡초일 뿐.


주택으로 이사 온 이유도 '잔디' 그 자체보다는 '초록'을 가까이 두고 싶어서였다. 그렇다면 잡초 또한 초록의 일부 아닌가. 결국 이 마당을 채운 건 잔디와 잡초, 그리고 그 둘을 지켜보는 우리였다. 정신승리에 가깝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물론 생각과 다르게 현실은 여전히 무자비하다. 하루 종일 흐린 날에도, 거센 비가 내린 다음 날에도 잡초는 거리낌 없이 다시 자라났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완벽을 포기했다. 주말마다 잡초를 뽑고 평일 내내 그것을 걱정하며 사는 건 내가 꿈꿨던 삶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공생'하며 살아간다. 보기 흉한 것들만 뽑고, 나머지는 그냥 함께 하는 방식으로.


완벽하게 깔끔한 마당은 존재할 수 없다. 그저 ‘적당히’ 어울리며 살아가는 거다. 요즘은 마당에 나가면 잡초를 뽑기보다는 그 위를 천천히 걸어 다닌다. 그 사이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뛰어오르고 햇살은 잔디든 잡초든 가리지 않고 비춘다. 그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잡초가 있는 마당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에서 나는 조금 더 너그러워진 나 자신을 발견한다.

keyword
이전 13화세 평의 텃밭, 그리고 나의 첫 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