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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섰다, 노래는 안 했다

초보의 첫 공연 생존기

by 피터의펜

그렇게 집에 와서는 한참 동안 거실에 앉아 공연곡을 연습했다. 혼자 하는 공연이라면 차라리 속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망치면 나 혼자 망신당하고 끝이니까. 하지만 이번엔 팀이다. 내가 틀리면 다 같이 흔들린다. 단체라서 덜 떨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떨린다.


지금까지는 늘 앉아서 쳤다. 오른발 밑엔 받침대를 두고, 기타는 오른쪽 허벅지 위에 얹었다. 코드 위치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자세도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공연은 다르다. 줄을 매고 서서 연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자세였다.


그래서 그날, 연습 중간에 일어나 자세를 잡아봤다. 기타는 자꾸 흔들리고, 손끝은 줄을 더듬었다. 코드는 잘 안 보이고, 스트로크는 불안했다. 30분쯤 지나자 비로소 조금 익숙해졌다. 조금 오버한 것 같아도 먼저 해보길 잘했다. 무대 위에서 이런 불안한 감각을 처음 느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연습을 이어갔다. 곡의 리듬이 손에 익고, 노래가 입에 붙을 때쯤 수요일이 되었다. 그날은 어머님들로 구성된 공연 팀과 함께 연습하는 날이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평균적으로 나보다 스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분들이었다. 금요일 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이틀.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 합주였다. 내 역할은 명확했다... 철저히 병풍. 무대에서는 뒤쪽, 구석자리. 게다가 내 기타는 앰프 연결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걱정 말아요. 그냥 마음껏 치면 돼요."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고마웠다.


다만, 선생님은 한 가지를 덧붙였다.

"남자 목소리가 필요하니까, 평소보다 좀 더 크게 부르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는 아니어도 노래를 즐기긴 한다. 하지만 무대에서 부르라니. 게다가 남자는 나 혼자다. 틀리면 그대로 다 들린다.


'그날 아침엔 삼겹살이라도 먹을까?'

'요즘 감기 도는데 목이라도 상하면 어쩌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공연 당일, 너무 떨려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학원에는 정오까지 모이라 했고, 나는 제일 먼저 도착했다.


"각자 기타 매고 이동합시다. 짐도 같이 나르고요."

장비를 싣고 내리고, 무대를 설치하는 동안 손끝이 점점 차가워졌다.


처음엔 '버스킹'이라길래 그냥 공원 연습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도심 한가운데다. 단상이 있고, 관객석이 있고, 마이크까지 세팅되어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멈춰 서서 쳐다본다. 생각보다 훨씬 진짜 공연이었다.


리허설이 시작됐다.


기타를 메자마자 손에 땀이 차올랐다. 외워뒀던 코드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났다. 악보를 챙겨 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악보를 따라가느라 한 박자 늦었고, 박자에 집중하느라 노래는 입술에서만 맴돌았다.


선생님이 알려줬던 복식호흡, 두성, 고음 처리법... 그 모든 건 머릿속에서 증발했다. 남자 목소리, 크게 하라던 당부도 잊은 지 오래다. 결국 고음 구간에선 립싱크로 넘어갔다. 어머님들의 목소리에 묻어가기로 했다.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느라 입이 얼얼했다. 아마 관객들은 내가 파리넬리처럼 노래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라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았다. 첫 무대를 무사히 마쳤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다른 팀 공연이 이어졌지만, 나는 다른 일정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사실 아무 약속도 없었다.


그저 기운이 다 빠져 있었을 뿐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기타를 내려놓고 거실 바닥에 누웠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때 아이가 물었다.

"아빠, 오늘 공연 잘했어?"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응, 다행히 무사히 끝났어."


사실 첫 공연이라고 가족을 부르진 않았다. 립싱크 무대에 가족 초대는 좀 아니잖아. 그래도 오늘은 나 자신이 조금 자랑스럽다.


혼자였다면 무서워서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팀에 속했기에, 그래도 버틸 수 있었다. 현장에선 아무 말도 못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음이 한결 가볍다. 이 나이 먹어서 뭐 하는 건가 싶던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그 결심이 꽤 괜찮았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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