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규칙 하나가 만들어준 식탁의 평화
가족 여행 얘기를 할 때면 늘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 소재가 있다. 그중 첫 번째는 몇 해 전 다녀온 코타키나발루다.
그 여행은 거의 기적처럼 찾아왔다. 우연히 검색한 항공권이, 그 주간에만 유독 말도 안 되는 특가로 떠 있었다. 달력을 펼쳐보기도 전에 결제 버튼을 눌러버렸다. 혹시나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가족행사가 걸려 있더라도, 그 정도는 양해를 구하겠다는 결연한 마음이었다.
도착 후 며칠은 정말 천국이었다. 호텔과 바로 연결된 바닷가, 배를 타고 들어간 섬의 바다는 우리나라의 어떤 바다에서도 본 적 없는 색이었다. 온종일 물에 떠 있다가 저녁이면 땅 위에서 비틀거릴 정도로 놀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곧 이어질 '먹거리 전쟁'은 상상도 못 했다.
그간 다녀온 여행지들은 하나같이 맛의 천국이었다. 베트남에선 반미와 쌀국수가 인생 음식이었고, 괌의 햄버거는 불맛과 수제느낌을 모두 잡아냈다. '미식 여행 교과서'가 있다면 아마 우리 가족이 사례로 실렸을 거다.
그런데 코타키나발루에서는 유독 음식이 맞지 않았다. 뜨거워야 할 건 미지근했고, 차가워야 할 건 따뜻했다. 게다가 닭요리가 주류라 며칠 지나자 모두 닭을 질려버렸다. 결국 KFC로 버티다 못해 한식당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먹은 삼계탕, 뚝배기 불고기, 삼겹살.
그제야 아이들의 표정이 살아났다. 그릇이 비워지는 모습을 보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 아이들이 은근히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라는 걸 말이다.
집에서도 그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감이 별로야."
"국물이 너무 적어."
"보쌈은 이제 질렸어."
식탁 앞은 늘 작은 협상 테이블 같았다. 한창 잘 먹을 나이에, 아이는 단식 투쟁이라도 하듯 먹는 걸 거부했다. 우리는 잔소리를 퍼붓다가, 지쳐서 결국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대신 네가 먹고 싶을 때 알아서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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