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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까지 삼만보

가는 길은 멀고, 돌아오는 길은 짧다

by 피터의펜

예전에 살던 동네를 떠올려보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큼지막한 구립도서관이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횡단보도 두어 개만 건너면 닿는 거리였으니, 물리적으론 결코 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길이 닿지 않았다.


도서관은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그만큼 오랜 시간 쌓여온 서가에는 책이 빼곡했다. 가끔은 페이지 귀퉁이에 아이들의 코딱지나 어른들의 아밀라아제가 묻어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특유의 책 냄새가 좋았다.


책을 끼고 사는 편은 아니지만, 멀리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아이도 책을 조금은 좋아했으면 했다.

적당한 거리에 두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길 바랐다.


하지만 도서관에 가는 길이 멀었다. 정확히 말하면, '도서관까지 가는 과정'이 멀었다.


출발도 하기 전부터 아이는 다리가 아프다며 울고불고했다. 겨우 달래서 나서면 목이 마르다고 물을 사달라 하고 편의점에 들어가면 사탕이나 젤리를 고른다. 더 목이 막힐 텐데도 말이다. 그래도 도서관에 간다고 따라나선 게 기특해서 결국 지갑을 열게 된다.


가장 큰 고비는 도서관 바로 앞의 놀이터였다.


시의 지원금이 넉넉하게 들어간 곳이라 자전거 타는 아이, 공 차는 아이, 무서운 이야기 하는 아이들로 늘 북적였다. 그 곁을 지나치는 건 거의 수행이었다.


소나무 그늘 아래서 30 분을 버텨야 겨우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예전엔 너무 지쳐서 차로 가보기도 했는데 주차장을 돌다 돌다 결국엔 날이 서는 내 표정을 보고 그만두었다.


"아빠, 배고픈데. 우리 뭐 먹고 시작하면 안 돼?"


그렇다. 이 도서관의 1층엔 매점이 있다. 그 주인아주머니는 아이들 마음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의 소유자였다. 시대를 앞서가는 간식 큐레이터랄까. 어쩜 그렇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만 골라 두셨는지. 덕분에 아이는 이곳에 들어오면 책은 잊고 세상 신나게 구경만 하다 한참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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