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의 자리, 나의 자리
처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요즘은 기타를 조금 덜 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때는 정말 하루 종일 기타를 주물럭거리던 사람이었다.
물집이 생겨서 손끝이 화끈해도, 줄을 누를 때마다 전기가 '찌릿' 하고 와도 그래도 계속 쳤다. 가족들 눈에는 그 시절의 내가 약간은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거실 소파에서 허리를 곧게 세웠다가, 다리가 저려서 웅크려 앉았다가, 다시 무릎 위에 놓고 자세 잡느라 씨름하며 그 와중에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재밌어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냥 오직 나만을 위한, 무언가에 미친 듯 집중하고 싶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런 시간이 한 번쯤 필요하다.
지금은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열정이 식은 건 아니고, 그냥 사람이 조금 성숙해졌달까?
괜히 그런 척이라도 해본다.
그래도 이건 인정한다.
"아, 이거 그냥 내가 천천히 배워가야 하는 거구나."
이걸 받아들이게 됐다.
기타는 열정만 있다고 갑자기 재능이 열리는 악기가 아니다. 손도 굳어야 하고, 귀도 트여야 하고, 무엇보다 감이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 감이라는 게 또 시간을 먹는다. 시간과 친해져야 생긴다. 참나.
그래서 나는 '꾸준하지만 자주' 치는 방식으로 바꿨다. 현실적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이게 제일 오래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리듬을 조절하다 보니 기타를 어디에 둘지 고민이 생겼다. 예전에는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루 종일 들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소파 위에 계속 올려두자니 우리 집 소파는 온 가족의 휴식 공간인데 내 기타가 왜 거기서 왕처럼 앉아 있어야 하나 싶고, 그렇다고 매번 케이스에 넣어두자니 그 과정이 너무 귀찮았다.
케이스를 바닥에 눕히고, 지퍼를 열고, 기타를 살살 넣고, 지퍼를 또 닫고, 이 과정을 하고 나면 기타를 다시 꺼낼 마음의 50%가 사라진다. 기타를 넣는 게 아니라 포장을 하는 기분이다.
짧게 자주 치려는 나의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다.
그래서 결국 결론은 하나. 거치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릿속의 소비 본능이 스멀스멀 기지개를 켰다. 학원에서 봤던 그 다양한 거치대들, 벽에 고정하는 것, 삼각대처럼 생겨서 두 대를 거치할 수 있는 것, 그 모든 장면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날 밤, 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거치대 검색 대장정'을 시작했다.
후기를 읽고 또 읽었다.
심지어 후원받아 쓴 후기와 악플러가 쓴 것 같은 리뷰까지 다 읽었다. 상품 상세 설명은 거의 필기시험 보듯 한 글자 한 글자 챙겨봤다. 거치대 다리 각도까지 비교하는 내 모습을 보고 그 열정에 스스로 감탄했다.
그러다 드디어 찾았다. 적당한 높이, 적당한 쿠션, 충격 방지도 되고, 우리 집 동선도 안 막는 기타 스탠드다. 누가 보면 그냥 평범한 기타 스탠드인데 내 눈에는 거의 '완벽한 조합'처럼 보였다.
'그래, 이거다.'
배송 오자마자 조립했다. 그리고 기타를 올렸다. 살포시 올려봤다가, 현실성을 고려해 툭 하고 던지듯 거치해도 봤다. 어떤 각도로 올려놔도 기타가 다치지 않고 착- 하고 들어앉는 걸 보고 약간 감동했다.
"이야.. 이건 진짜 괜찮다."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진작 살걸.
그때부터 집안 풍경이 바뀌었다. 정확히는, 아이들이 바꿔놨다.
지나가다가 꼭 줄을 '퉁-'하고 건드린다.
"아빠, 이거 튜닝된 거 맞아?"
"아빠, 오늘은 왜 안 쳐?"
"아빠, 어떤 음 인지 맞춰봐!"
이게 기분 나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고마운 것도 아니고,
묘하게 귀엽고,
조금 창피하고,
그런 이상한 감정이다.
그러더니 급기야 이러는 거다.
"아빠, 내 기타도 여기 둘 수 있어?"
정확히 말해서 반박할 말이 없다. 거치대에 '아빠 전용'이라고 쓰여 있는 건 아니니까. 솔직히 실력만 보면 아이 기타가 더 좋은 자리에 가는 게 맞다. 그걸 인정하는 내가 또 웃겼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거치대에 기타가 걸려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든든하다.
그건 단순히 보관 용품을 산 게 아니다.
그냥 기타에게 건넨 작은 약속 같은 거다.
"우리의 속도가 느릴 뿐, 마음은 아직 그대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메시지가 하나 있다.
아빠도 아직 배우는 사람이라는 것. 아직은 느리고 서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다는 것을 말이다.
대단한 가르침을 주려는 건 아니다. 그냥 언젠가 아이들이 힘든 순간을 만났을 때, 아빠가 기타 줄 잡고 낑낑대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조금만 더 버텨줬으면 하는 마음 정도다.
지금도 거치대는 벽에 조용히 서 있고 그 위에 기타가 얌전히 기대어 있다.
가끔 그 앞을 지나가다가 애들처럼 나도 모르게 줄을 '퉁-' 하고 건드린다. 그 한 번의 소리에 하루의 결이 살짝 부드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거치대에 올라간 기타를 보면 묘하게 든든하다. 심지어 보기만 해도 실력이 느는 기분이다.
(느는 건 아니지만, 기분만큼은 그렇다.)
물욕을 못 이기고 결국 사버렸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참 잘 산 거다.
어째 기타하고 더 친해진 기분이다. 내가 소중하게 대해주니 기타도 아마 조금은 나를 좋아해 줄 것 같다.
(기분 탓이라도 좋다.)
이제는 기타를 잘 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이게 가장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기대하게 된다.
케이스를 벗어던지고 항상 내 곁에 서 있는 기타와 나.
우리의 거리가 정말 조금은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