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줄 하나에 흔들리는 가벼운 멘탈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서 몇 가지 소소한 루틴이 생겼다. 가장 먼저 A코드, C코드, D코드를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며 손을 풀어준다. 어느 순간에는 피크로 치다가, 어느 순간에는 손가락으로 여섯 줄을 동시에 튕겨보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화음이 꽤나 그럴싸하다.
그러다 아르페지오로 기본 코드를 훑다가, G코드를 잡는 순간 대뜸 임영웅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이유도 없다. 그냥 매번 그렇게 된다.
누가 알려준 연습법도 아니고, 숙제도 아니다. 어느 날 슬며시 시작된 루틴이 하나둘 쌓여 지금처럼 굳어져 버린 것뿐이다.
생각해 보면 준비운동 같은 건지 모른다.
평소엔 거의 쓰지 않는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억지로 끌어다가 쓰려면 손가락도 마음도 좀 풀어줘야 하니까.
그렇게 한참을 루틴처럼 반복하다 보니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1번 줄이 심상치 않다.
기타를 치다 보면 줄이 조금씩 느슨해져 어느 순간엔 원래보다 반음, 한음씩 낮아져 버린다. 그래서 조율은 일상이 되었다. 헤드에 조율기를 꽂고 연습을 시작할 때마다 튜닝 체크를 하는 거다.
그런데 오늘, 조율기는 1번 줄을 향해 주황색 바탕으로 >>>E를 띄우며 재촉했다.
"올려! 더 올려!" 하는 것 같다.
디지털 피아노를 들여놓은 지금이야 괜찮지만, 어릴 적 우리 집 피아노도 매년 조율을 했다. 귀를 쫑긋 세우던 조율사 아저씨의 진중한 표정을 떠올리며 나도 그 못지않게 비장한 마음으로 튜닝에 집중했다.
문제는 이 순간이 거의 담력 테스트에 가깝다는 것이다.
줄이 이미 꽤 팽팽한데, 조율기는 계속 화살표를 앞세워 더 올리라며 윽박지른다.
해본 사람은 안다. 지금 이 감각 그리고 공포를 말이다. 조금만 더 돌리면 '딱!' 하고 끊어질 것 같은 그 느낌이다.
그래도 조금씩 돌리다 보면 >>E로 그리고 다시 >E로 원래의 음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이쯤 되면 그냥 여기서 멈춰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 화살표 하나쯤이야...' 싶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끊어질까 무섭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더 돌리고 싶은 날이었다. 내가 무슨 베토벤도 아닌데, 1번 줄이 내는 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며 괜히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반 바퀴를 더 돌리려던 순간.
"핑."
끊어졌다.
아뿔싸.
잠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끊어진 줄은 축 늘어진 채 매달려 있고, 기타는 여전히 내 손에 들려 있었다. 그제야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고요한 곳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아... 거기서 멈출걸."
줄이 나를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사람에게는 가끔 '기묘하게 예민해지는 순간'이 있다. 아까의 내가 그랬다. 줄이 끊어질 것 같다는 그 감각처럼말이다.
그럼에도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더 돌리고 싶은 그 이상한 욕망이 샘솟았던 거다.
하지만 뭐 하러 이런 분석을 하나.
이미 끊어졌다. 의미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1번 줄 하나 끊어졌다고 오늘 기타를 쉬기에는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악기점으로 달려가도 되지만, 그러면 "온 김에 연습 좀 하고 가요~" 하며 사장님이 붙들 것 같은 불길한 촉이 발동했다.
그렇다고 온라인 주문을 하면 배송은 빨라야 내일 새벽이다. 그때까지 기타를 안 칠 수는 없다.
누군가 "하루라도 독서를 안 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고 했다는데 나는 기타가 그렇다. 안 치면 손끝의 굳은살이 괜히 간지럽다.
그래서 결국 집에 굴러다니던 예비 줄을 찾기로 했다. 처음 기타를 샀을 때 들어 있던 그 지퍼백.
기억을 뒤져 집 안을 뒤지다 보니 기적처럼 그 줄을 찾아냈다.
'이 정도면 나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유튜브에 온갖 영상이 넘쳐나고 나는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기로 소문났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안다.
이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악기점 사장님이 늘 해주시던 그 작업이 옆에서 볼 때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내가 하려니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 느낌이다.
결국, 항복하고 악기점으로 향했다.
대신 최대한 피곤한 표정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괜히 연습시키는 분위기를 피해보려 한 거다.
"안녕하세요. 기타 줄이 끊어졌어요."
"예, 이리 줘보세요."
사장님의 손놀림은 역시나 예사롭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고, 힘을 주는 듯 안 주는 듯, 줄은 어느새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오늘은 그냥 서비스로 해드릴게요."
갑자기 시무룩하던 표정이 싹 풀렸다.
사람이란 참 단순하다.
서비스면 일단 다 좋다.
기타를 가방에 넣으며 나도 모르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조율 안 하려고요. 자꾸 끊어먹어서요."
사장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원래 그러면서 배우는 거예요. 조율은 꼭 하세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조율이 겁나도, 줄이 끊어질까 두렵더라도, 결국엔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
기타도 그렇고, 내 마음도 그렇다.
좋은 소리를 내고 싶다면, 언젠가는 다시 맞춰야 한다. 어쩌면 쭈뼛쭈뼛 망설이며 돌리던 내가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한 번에 시원하게 돌렸다면,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조용히 다짐했다.
다음번에는, 목장갑을 끼고
망설이지 않고, 한 방에 조율을 끝내버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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