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썬플라워

제1장 몽땅이 스토리

by TongTung

니코가 다친 후, 몽땅이는 홀로 있을 때마다 조심스레 자신의 뾰족한 부분을 문질러, 조금씩 부드럽게 다듬어가곤 했습니다. 오늘도 몽땅이는 자신의 뾰족이를 열심히 다듬고 있었는데, 그때 연필꽂이 통 속에서 갑자기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지우개 포슬이가 펄쩍펄쩍 뛰며 외칩니다.

"엘리가 선플라워를 들고 갔다!"

몽땅이는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뭐라고요? 그게 대단한 일인가요? 왜들 난리죠?"

포슬이는 고개를 저으며 평소와 다르게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아니야, 몽땅아. 해바라기 할머니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어. 그냥 해바라기 모양이 예뻐서 루카가 이곳에 둔 거야. 어른들은 모양 때문에 불편하다고 사용하지 않았고, 루카나 리코도 볼펜을 쓰지 않으니까."

'그랬구나... 해바라기 할머니는 이렇게 오랫동안 있었는데도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거였구나.'

몽땅이는 미처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때, 연필꽂이 속에서 깊고 웅장한 목소리가 울려 퍼져 나옵니다.
"그 오랜 세월을 그녀는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을까?"

깜짝 놀란 몽땅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습니다.
"누구세요? 지금 말씀하신 분은 누구죠?"

포슬이와 기린 가위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줍니다.
"그건 바로 연필꽂이님이야. 여기서 제일 오래된 분이지. 피터(루카의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 계셨대."


연필꽂이의 웅장함과 메아리 같은 목소리가 다시 이야기를 해줍니다.

"선플라워는 10년 전, 피터(루카의 아빠)의 연구소 창립 기념일을 기념해서 특별히 만들어진 볼펜이란다. 연구소의 상징인 해바라기 모양으로 정성껏 제작됐지. 피터는 그 볼펜을 선물로 받고, 서재 책장에 올려놓고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단다."

몽땅이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여기까지 오시게 된 거예요?"

연필꽂이는 마치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는 듯,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몇 해 전, 더 어린 루카가 서재에서 우연히 상자를 발견했단다. 그 상자 속에서 해바라기 모양의 볼펜을 보고는 눈을 떼지 못했지. 너무 예쁘다며 자기에게 줄 수 있냐고 피터에게 물었고, 피터는 흔쾌히 허락했단다. 그렇게 선플라워는 이곳으로 오게 된 거야."

포슬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거듭니다.
"맞아. 그때 루카는 해바라기 할머니를 보물처럼 다뤘어. 며칠 동안 손에서 놓지 않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거든... 하지만..."

포슬이의 목소리가 작아집니다.
"그 관심이 오래가진 않았어. 얼마 지나지 않아 루카는 다른 것들에 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 해바라기 할머니는 다시 여기 연필꽂이 속에 조용히 자리 잡게 됐어."

몽땅이는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졌습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그 긴 세월을 견뎌왔을까...'



몽땅이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럼 할머니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연필꽂이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기침을 한 후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처음엔 당황해했지. 그렇게 좋아하던 루카가 관심을 잃고, 금방 식어버리니 놀랄 수밖에. 하지만 선플라워는 창밖을 보며 매일 아침 햇살을 즐겼단다. 뛰어노는 루카를 바라보며 행복해했고, 새로이 깨달은 것을 나에게 들려주곤 했지. 세상은 정말 흥미롭고 아름답다며."

"그런데도 볼펜으로 사용된 적은 없었다는 건가요?" 몽땅이는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그래. 그녀는 자신이 볼펜인지라 잉크가 말라가고, 볼펜볼이 굳어지는 걸 느꼈어. 우울해하기도 했지. 자신이 이대로 영원히 쓸모없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했단다."

몽땅이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나라면 너무 슬펐을 것 같아요.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를 잃어버린다면, 그건 정말..."

연필꽂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썬플라워는 그런 슬픔을 딛고,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냈지. 그녀는 진짜 해바라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단다. 진짜 해바라기는 그 모습 자체로도 사람들에게 행복을 준다고. 그녀는 아침 햇살 속에서 창밖 세상을 보고, 매일 알아가는 것들에 감사했어.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작은 행복을 전하고 싶다고 했지."


"하지만 볼펜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정말 의미가 있는 걸까요?" 몽땅이는 혼란스러워하며 되물었습니다.


연필꽂이 할아버지는 나직이 웃으며 손자에게 속삭이듯.

“선플라워는 늘 창가에서 환히 빚나지? 선플라워가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볼펜일지라도, 우리에겐 아침 햇살 같은 존재란다. 사실 그녀는 오래된 친구여서, 볼펜이라는 사실조차 잊곤 한단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그러니까 ‘쓰임새’만으로 가치를 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지. 의미라는 건 남이 정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피워 내는 거니까.”


“몽땅아, 네 안에도 그런 빛이 분명 숨겨져 있단다. 몸이 작든, 부러져 있든. 그 빛을 어떻게 비출지는 오롯이 네 몫이야. 이제, 누군가 너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아니라, 네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네 안에 숨겨진 빛을 따라 너만의 길을 찾아보렴"



몽땅이는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내 의미를 내가 찾아야 한다고? '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습니다.

' 내 의미를 내가 찾아야 한다니, 루카가 찾아주어야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 그게 가능해?......'


창밖에서 살며시 들여다보던 키키는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몽땅아... 너도 해바라기 할머니처럼 강해질 수 있을 거야. 꼭.'

어스름히 저녁이 되어갔고, 연필꽂이 할아버지는 다시 잠들었습니다.


혼란과 희망이 머리를 어지럽게 얽혀 매고, 밤하늘의 별빛은 고요합니다.

몽땅이의 마음속으로는 새로운 변화가 점차 다가오고 있습니다.

keyword
이전 11화절망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