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서 Nov 19. 2024

얼굴도 곱지만 마음은 천만 배 더 고와

꽃보다 고운 건 너였어

'허리는 좀 어때? 다음 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너네 집 근처에서 차 한잔 마시고 산책할까?'

 

 주말 오후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는데 생각지 못한 친구의 문자 메시지 어떻게 답문을 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5개월 전 내가 이사 친구와의 거리제법 멀어졌다. 전해서 온다고 해도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만나서 차 마시고 이야기할 시간은 고작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금보다 귀한 세상에서 오가는 시간이 만나는 시간보다 긴데도 기꺼이 오겠다는 친구의 마음 고맙고도 미안해 뭉클해졌다.

 

 우리의 첫 만남은 3년 전이다. 

 "엄마, 옆집에 우리 반 친구 살아. 내일 학교 같이 가기로 했어."

 

 "어머, 친구가 사는지도 몰랐네."

 

 워킹맘으로 지내다 보니 옆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만큼 분주했던 삶에 새삼 놀랐다.


  "엄마, 나 옆집에서 조금 놀다 올게."


  아이는 친구네 가는 걸 좋아했다. 마운 마음에 하루는 아이들 먹을거리를 사가지고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매번 이렇게 아이를 따듯하게 대해주시니 감사해요. 우리 집에도 한번 놀러 오세요."

 

 가정과 내 일에만 집중하며 살던 내가 타인에게 먼저 마음을 열었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아마도 그 친구의 온화한 미소에 묻어 나오는 따듯함 열게 한 듯하다. 아들도 그래서 자꾸 옆집이 끌렸나 보다. 동갑내기인 우리는 취향 비슷했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강원도 바다를 좋아하는 것도, 와인을 좋아하는 것도. 말이 잘 통하다 보니 금세 친해졌다. 사이가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관계의 선이 무너지기 마련인데 늘 예의를 지켜주는 친구의 보이지 않는 배려가 고마웠다. 시답지 않은 얘기도 묵묵히 들어주는 푸근함에 친구를 만나 오는 날이면 지쳤던 마음은 항상 온기로 가득 찼다.


  '택배 보냈어. 오늘 도착할 거야. 잘 먹어야 금방 나을 수 있어.'


  '책 도착할 거야. 디스크 관련 책인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허리 다친 걸 구보다도 걱정해 주던 친구는 수시로 안부를 물으며 기를 보내왔다. 한 번씩 무너져 내렸던 마음은 친구의 말 한마디에 다시 일어서곤 했다.


 허리가 아파 생각한 대로 빠르게 행동하지 못하는 나는 느릿느릿 거북이 되었다. 설거지가 끝나면 한참을 누워있다가 청소기를 돌린다. 그러고 나선 또 참을 누워있고... 누워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도 켜켜이 쌓이는 요즘. 그 가운덴 고마운 친구의 모습이 있다. 외로울 때 기꺼이 함께 해주는 고운 사람의 모습이.

 

 고작 1시간 반의 짧은 만남이겠지만 그 시간은 나를 일으켜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나는 그 기억으로 힘내어 살아갈 수 있으니.



​꽃이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먼저 본 줄 알았지만
봄이 쫓아가던 길목에서
내가 보아주기를 날마다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 건 줄 알았지만
바람과 인사하고 햇살과 인사하며   
날마다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내가 먼저 웃어 준 줄 알았지만
떨어질 꽃잎도 지켜 내며
나를 향해 더 많이 활짝 웃고 있었다     

​내가 더 나중에 보아서 미안하다

                                                     정여민-꽃

 

 

 

이전 03화 울었지만 창피하지 않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