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는 좀 어때? 다음 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너네 집 근처에서 차 한잔 마시고 산책할까?'
주말오후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는데생각지 못한 친구의 문자 메시지에어떻게 답문을 해야 할지 잠시머뭇거렸다.
5개월 전내가 이사를 하며 친구와의 거리는 제법 멀어졌다. 운전해서 온다고 해도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만나서 차 마시고 이야기할 시간은 고작 1시간 30분정도.시간이 금보다 귀한 세상에서 오가는 시간이 만나는 시간보다 긴데도 기꺼이 오겠다는 친구의 마음이 고맙고도 미안해 뭉클해졌다.
우리의 첫 만남은 3년 전이다.
"엄마, 옆집에 우리 반 친구 살아. 내일 학교 같이 가기로 했어."
"어머, 친구가 사는지도 몰랐네."
워킹맘으로 지내다 보니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만큼 분주했던 삶에 새삼 놀랐다.
"엄마, 나 옆집에서 조금 놀다 올게."
아이는 친구네 가는 걸 좋아했다.고마운 마음에 하루는 아이들 먹을거리를 사가지고 찾아갔다.
"안녕하세요?매번 이렇게 아이를 따듯하게 대해주시니 감사해요. 우리 집에도 한번 놀러 오세요."
가정과 내 일에만 집중하며살던 내가 타인에게 먼저 마음을 열었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아마도 그 친구의 온화한 미소에묻어 나오는 따듯함이마음문을 열게 한 듯하다.아들도 그래서 자꾸 옆집이 끌렸나 보다. 동갑내기인 우리는 취향도 비슷했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강원도 바다를 좋아하는 것도, 와인을 좋아하는 것도. 말이 잘 통하다 보니 금세 친해졌다. 사이가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관계의 선이 무너지기 마련인데 늘 예의를 지켜주는 친구의 보이지 않는 배려가 고마웠다. 시답지 않은 얘기도 묵묵히 들어주는푸근함에 친구를 만나고오는 날이면 지쳤던 마음은 항상 온기로 가득 찼다.
'택배 보냈어. 오늘 도착할 거야. 잘 먹어야 금방 나을 수 있어.'
'책 도착할 거야. 디스크 관련 책인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허리 다친 걸 누구보다도 걱정해 주던 친구는 수시로 안부를 물으며 용기를 보내왔다. 한 번씩 무너져 내렸던 마음은 친구의 말 한마디에 다시 일어서곤 했다.
허리가 아파 생각한 대로 빠르게 행동하지 못하는 나는 느릿느릿 거북이 되었다. 설거지가 끝나면 한참을 누워있다가 청소기를 돌린다. 그러고 나선 또 한참을 누워있고...누워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도 켜켜이 쌓이는 요즘. 그 가운덴 고마운 친구의 모습이 있다. 외로울 때 기꺼이 함께 해주는고운 사람의 모습이.
고작 1시간 반의 짧은 만남이겠지만 그 시간은 나를 일으켜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나는 또 그 기억으로 힘내어 살아갈 수있으니.
꽃이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먼저 본 줄 알았지만 봄이 쫓아가던 길목에서 내가 보아주기를 날마다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 건 줄 알았지만 바람과 인사하고 햇살과 인사하며 날마다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내가 먼저 웃어 준 줄 알았지만 떨어질 꽃잎도 지켜 내며 나를 향해 더 많이 활짝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