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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5시간전

사춘기 아들은 왜 더러운가요?

사춘기 아들은 처음이라

 아침에 눈을 뜨 다짐다. 욱하지 말자. 오늘 하루 화내지 말자. 남들은 상쾌한 아침 공기에 눈을 뜨면 자존감을 높이거나 자기 계발을 위해 확언을 한다고 하던데 나는 굳은 결의를 다지고야 만다.

 

 '화를 내더라도 정당한 일에 합당 화를 내게 하소서'


 하지만 일어나서 5분도 안 되어 갈가리 찢기고 마는 다짐서. 아들은 12살이다. 정수리에서 냄새가 나고 이마에는 여드름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사춘기에 접어들며 아들의 행동이 부쩍 거슬다.


 "엄마, 내 영어책 못 봤어?"

 

 10분을 넘게 찾으러 다니는 아이의 분주함 속에서 내 레이더망에 걸려든 아들의 책상.

 

 "야, 이러니까 못 찾지. 엄마는 네 책 본 적이 없다. 돼지우리도 아니고 저 상태에서 책을 찾을 수 있겠어? 엄마가 여러 번 얘기했는데 정리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말 안 하려고 그랬는데 어제 네 방 청소하다가 침대 뒤에 네가 몰래 꽂아놓은 양말 봤다. 언제적 양말이냐? 잠이 오냐? 냄새나서? 앞으로 정리 좀 하고 살아."

 

 1절만 해야 했는데 기어 2절 3절을 하고야 말았다. 아들의 퉁 하게 부은 얼굴과 붕어 입을 보니 또 한 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가 잘못한 거 있어?"


 "아니."


 "엄마가 정리하라고 한 게 기분 나빠?"

 

 "아니."


 "그러면 왜 입이 나왔어?"

 

 "학교 늦었어."


 잔소리를 하다 보니 등교 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축 처진 어깨에 산만한 가방을 메고 터터덜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니 후회가 밀려왔다. 학교 가는 아이를 붙잡고 꼭 이렇게 화내야 했을까? 화를 내더라도 지혜롭게 내고 싶었는데... 사실은 아들이 걱정되는 거였는데. 정리 안 된 방에서 매번 뭔갈 찾는 아들의 시간이 아깝고 가뜩비염으로 고생 중인 아들의 건강이 지저분한 환경 때문에 더 나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거였는데. 국 나는 속마음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들이 휩쓸고 나간 휑하고 차가운 자리에 두커니 남겨져 버렸다. 한참이나 멍 시선으로 있다가 아들 책상 위 어지러이 널려 있는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책 사이 수줍게 써 내려간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출처- Pixabay

 '엄마 저예요. 일하면서 힘드실 텐데도 저를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먹고 싶다는 치킨도 사주셔서 감사하고요. 언제나 저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엄마 말도 잘 듣는 아들이 될게요.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학교 수업 시간에 쓴 편지 같았다. 투박하지만 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 편지를 읽고 나니 콧잔등이 시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뒤늦게 청소년 심리학까지 전공는데...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은 아이의 마음과 입을 닫게 만드는 엄마가 되 건 닌지 두려웠다. 역시 이론과 실전  차이가 있나 보다.


 더 늦기 전에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힘껏 안아줘야겠다. 그리고 엄마의 본심은 그게 아니었 미안하다고 따뜻하게 사과해야겠다.

 

 '사춘기 문을 열고 한 걸음 내디딘 아들아, 너도 네가 낯설겠지. 엄마도 사춘기 아들을 둔 건 처음이라 이론과 실전이 어긋날 때가 많구나.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 너의 사춘기가 건강하게 지나가길 응원한다.'


그런데 양말은 제발 세탁기에 갖다 놓아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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