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눈여겨봐둔 도서관 프로그램이 9월부터 시작했다. 작가 선생님이 이끄는 글쓰기 수업인데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합평과 퇴고 과정을 거쳐 책까지 출간하는, 이른바 '작가 되기 수업'이다.내가 쓰는 글이 책으로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와 설렘으로 수업이 빨리 시작되길 기다렸다. 허리 디스크가 생기기 전까진.
온전히 두 시간을 의자에 앉아 수업할 수 있을지.세상에서 가장 쉬웠던 일이 생각만 해도 진땀을 나게 할 줄 상상하지 못했다.
여러 날의 고민 끝에 그래도 꼭 듣고 싶었던 수업이라 아픈 허리와 몸을 달래 가며수업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기다리던 첫 수업에 작가 선생님은 거침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하였다.의식의 흐름대로 거침없이. 손이 가는 대로 거침없이. 맞춤법, 띄어쓰기, 기교 생각하지않고 거침없이.
수업이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는 뻣뻣해지고 다리는 전기침이 찌르는 듯 따가웠다. 좀 더 참아보려 했지만,시간이 갈수록 몰아치는 통증에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몸도 마음도 아프다. 아픈 몸은 마음까지 전이되어한없이 나약해지는 요즘이다. 좋아하던 수영은 더 이상할 수 없게 되었다..."
거침없이 써내려간글을 돌아가며 읽어나갔는데 내 차례에서 그만 글을 다 읽지 못하고 울컥하고 말았다. 울컥한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눈물까지 만들고야 말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색했는데 거기에다 눈물까지 보였으니 참으로 부끄러웠다.
허리 디스크가 남의 이야기일 땐 현대인들이 갖는 흔하디 흔한질병 중 하나라고 치부해 버렸는데 나의 이야기가 되니 이건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었다. 이 병은 세상에서 환자를 가장 고독하게 만드는 병. 마음밭을 서서히 상하게 하다가 썩어지게 하는 병.
눈물이 마르고 이성이 돌아온 자리엔 창피함만 남았다. 부끄러운 마음에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재빨리 나가려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힘드시죠? 저도 그 마음 알아요. 지금 가장 힘들 때예요. 저는 디스크 터지고 처음에 걷지도 못했어요."
수강생 중 한 명이 위로해 주기 위해 다가온 것이다.마음이 울컥했다. 상했던 몸과 마음에 연고를 바르는 듯했다.
'나도 알아. 네 눈물의 뜻 나도 알아. 창피해할 것 없어. 나도 알아.'
같은 경험은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보듬어 주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수강생의 눈이그리 말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수업을 듣는 수강생 중 몇몇 분이 허리 디스크로 나와 같은 통증과 마음의 상처를 겪어봤다는 거다. 그분들은 첫날의내 글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공감의 언어를 보내왔을 것이다. 내 눈물자욱이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을 뿐.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용기가 생겼다.
나도 곧 지나가겠지. 저분들처럼.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만나면 공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 저분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