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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Nov 12. 2024

이렇게는 못 살겠는데

도수치료가 도로아미타불

 '곧 나아지겠지. 수영까지 못할 정도는 아닐 거야. 한 일주일 뒤면 원상 복귀할 수 있겠지.'


 하지만 몸은 마음 같지 않았다.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누워있어도, 서 있어도, 앉아 있어도 편한 자세는 하나도 없었다. 다리는 불타오르다 차갑게 식었고 수백 개의 가시 바늘이 한 번에 덮치다가 전기톱으로 갈가리 찢기는 느낌이었다.


 아팠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였고 아내였으며 글쓰기를 지도하는 교사였다. 야 할 일이 더 많아진 것도 아닌데 내 앞에 쌓여 있는 일들 산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오전에 아이들이 학교가면 집안일을 하고 수영을 한다. 수영을 하고 나서는 오후에 있수업 준비를 하고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길 기다린다. 간간이 책도 읽고 글도 쓴다. 보통의 내 오전 일과이다. 오후부터는 수업을 해야 해서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오전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꽉 채우고 싶었다. 그런데 허리 고장 나니 삶의 시계도 삐걱대기 시작했다.


 여러 번의 신경차단 주사에도 불구하고 통증은 가라앉질 않았다. 허리디스크 치료로 유명하다는 신경외과도 가보고 한의원 명의도 찾아다녔다. 꼭 해야 한다는 스트레칭도 열심히 따라 했다. 좋아질 줄 알았던 통증은  수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나날이 거세어갔다. 몸이 아프니 마음 한없이 약해져 갔다. 생기 사라이파리가 메마른 화분에 생명만 겨우 유지한 삶었다.


 '다시 수영할 수 있을까? 다시 내 삶에 봄은 찾아올까?' 

 

 저녁 반찬거리를 사러 집 앞 슈퍼마켓에 갔다 돌아오는 길, 우연히 마주친 지인이 전해준 말은 절망 끝에 비친 한 줄기 빛과 같았다.


 "OO 역 근처 ×× 병원 도수 치료사 기가 막히게 잘해."








 '도수 치료사가 두 명 있는데 개중 몸집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지? 아.. 저 사람이군.'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도수 치료실을 빠르게 눈으로 스캔한 후 병원 카운터에 있는 직원에게 다가다.


 "저분한테 치료받고 싶어서 왔어요."


 "아,  선생님은 오늘 예약이 다 찼어요. 내일모레 10시 30분에 한 자리 남았는데 예약하시겠어요?"

 

 기운은 빠졌지만 '다 나았어' 말하는 지인의 습이 환영처럼 맴돌아 낼모레를 기약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오매불망 기다려온 이틀이 지나고 10시 30분에 맞춰 병원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 몸 상태 좀 체크할게요. 오늘은 가볍게 상태만 확인하는 정도로 끝날 거예요. 겁먹지 마세요."

 

 김 선생은 풍채만큼이나 내뱉는 말들도 믿음직스러웠다. 여기저기 몸 상태를 확인하던 김 선생은 디스크 수술을 바로 한 사람처럼 몸 전체가 뻣뻣하다며 혀를 찼다.

 

 "구부릴 수 있어요?"


 "구부리면 아파서 안 구부려요. 허리 안 구부린 지 한 달 넘었죠. 유튜브에 ooo 교수님도 절대 구부리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게 문제라니까. 그놈의 유..브! 평생 안 구부리고 살 거예요? 치료를 받는 목적이 뭡니까? 구부려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천천히 하면 됩니다. 접영도 곧 복귀할 수 있으니 믿고 따라오세요."


 하마터면 눈물이 날뻔했다. 남편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이 디스크 질환은 겉모습이 멀쩡하니 숨기면 내가 환자라는 걸 아무도 모른다. 처절히 외로운 병. 마음이 뭉그러지는 병. 그런데 김 선생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곧 접영까지 할 수 있게 만들어주겠다니 말만 들어도 금세 좋질 것만 같았다.


 "자, 다리를 들어서 배 쪽으로 붙일 거예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거예요. 겁먹지 마세요."


 '아, 이 스트레칭은 ooo 교수님이 절대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걱정되네.'


 "하나, 둘.. 숨을 코로 들이마시고 최대한 길게 배에 힘을 주면서 내쉬세요. 하나, 둘.."

  

 시간이 지날수록 김 선생의 치료 강도는 올라갔다. 유튜브 허리디스크의 일인자 ooo 교수님이 하지 말라는 것들만 골라한 거 같지만 그 교수님이 신도 아니고 사람마다 몸 상태는 다른 거니 김 선생을 믿어보기로 했다. 시간이 갈수록 몸이 가뿐해지는 기분이었다.


 1시간의 치료가 끝나고 바라본 김 선생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있었다. 역시나 믿음직스러웠고 내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역시! 김 선생. 이틀 기다린 보람이 있었어. 다치기 전 내 몸 상태가 이랬구나.'

 

 다음 치료를 단숨에 예약하고 병원을 나오는 내 걸음은 구름을 걷는 듯 뿐했고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있던 통증저 하늘 높이 날아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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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것도 딱 2분! 세상에나 마상에나... 딱 2분이 지나니 쓰나미급 통증이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가 후들거려 도저히 집까지 갈 수 없을 지경이 되었고 나는 길바닥에 또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믿음직스러웠던 김 선생은 세상에 둘도 없는 사기꾼으로 보였고 ××원을 소개해준 지인은 두 번 다시 만나면 안 될 사람처럼 느껴졌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있다 허리디스크 카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들어가 보니 같은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글이 우후죽순 많 올라와 있었다. 정보 좀 얻으려 읽어나간 글은 나 같이 절망적인 이야기들뿐.

 

 신경  함부로 맞으면 인대가 삭는다는 말. 진통제는 위를 다치게 하니 웬만함 먹지 말라는 말. 도수 치료를 잘못 받았다간 허리디스크가 더 악화 수 있다는 . 스트레칭하다가 마비가 왔다는 말지.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 어떡해야 하나. 수술해야 할까? 이렇게는 못 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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