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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Nov 26. 2024

화가 나면 베란다로 간다

당신만의 베란다는 어디인가요?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한 아침, 둘레길 걷는 건 접어둘까 하다가 이내 마음을 바꿨다. 매일 걷기를 하며 허리 통증이 부쩍 좋아져서 장대비가 아닌 이상 우산을 쓰고 걷기로 맘을 먹 것이다. 제법 서늘해진 공기에 옷깃을 한 번 더 여미고 우산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빗줄기가 세져 우산 안으로 물방울이 튀었다. 자그마한 물웅덩이를 요리조리 피해 조금 걷다 보니 어느덧 둘레길 초입에 다다랐다. 짙은 나무의 냄새가 수증기에 섞여 둘레길을 가득 메었다. 


 비 오는 날의 둘레길은 꿈결 같다. 사부작사부작 낙엽이 발는 소리, 툭투둑 나뭇잎에 닿아 미끄러지는 빗소리, 찌르륵 물기를 머금은 풀벌레 소리. 무도 없는 비 오는 날 둘레길에는 나와 자연이 만든 소리만이 오롯이 퍼져나갔다. 이 모든 공간이 내 것이 되는 시간. 이 모든 소리가 내 것이 되는 자유를 누린다.

 


출처-turtunder.blog.hu

 난여름 남편 없이 아이 둘을 데리고 치앙마이로 향했다.  맘을 먹기까지 설였던 이유 중 하나바로 나만의 공간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작은 호텔방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달을 살아야 하는데 내 공간은커녕 두 아이가 싸우지나 않음 다행이다 싶었다. 역시나 2살 터울의 두 아이는 놀기도 잘했지만 싸우기도 잘했다. 그럴 때마다 호텔방에 딸린 작은 베란다는 힘든 몸과 마음을 잠시 정화 주는 휴게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잠시지만 베란다에 나가 바깥 풍경을 보며 호흡을 크게 한 번 들마시 불쑥 튀어나올 거 같던 감정이 내려앉는 걸 느끼곤 했다. 작은 베란다가 없었다면 나는 괴물 엄마가 됐을지도 모른다.

 


 "엄마 책 읽고 싶은데 옆 테이블에 앉아도 되지?"


 책을 읽고 싶을 때면 이들카페에 갔다. 고양이가 있는 카페나 보드게임이 있는 카페,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카페에 가면 우리는 그 공간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아이들이 작은 즐거움에 매몰되어 있을 때 나는 아이들과 살짝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어나갔다. 이곳 사유 공간이 꺼이 되어 주었다.


 



 빗방울이 서서히 멈추자, 하나 둘 사람들이 둘레길을 찾다. 만의 공간이었던 그곳을 다른 이들에게 내어주 게 못내 아쉽지만, 이곳은 그들에게도 필요한 공간이리라. 어떤 이는 재활의 의지를 다지며 사투를 벌이는 공간으로. 어떤 이는 반려견과 산책을 하는 공간으로. 어떤 이는 일상의 지친 숨을 토해내는 공간으로. 이유야 어찌 됐든 각자에게 의미가 담긴 공간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쑥 튀어나온 감정을 이 가라앉혀주던 치앙마이 호텔방의 작은 베란다. 우리 두에 자의 베란다필요하다. 삶 온기를 더해주는 이곳이.


당신은 베란다를 가지고 있나요?


당신만의 베란다는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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