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사탕처럼 달달했던 휴일의 마지막 밤이 찾아오면 가족들의마음 소리가 바람 빠지는 풍선마냥 피익흘러나온다.
"주말은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 으윽. 내일이 벌써 월요일이다."
이런 아쉬운 일요일 밤을 달래주는 우리 가족의 최애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바로 기안 84의 기이한 여행기인 태계일주가 그것이었다. 기묘한 기안 84의 행동에 웃음으로 버무려진 마다가스카르 편은 보는 내내 붙잡고만 싶은 휴일의 마지막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마다가스카르 편에서 유독 내 시선이 머물렀던 곳이 있었으니 맑다 못해 투명하게펼쳐진끝없는 바다와 바닷속에서 자유로이 제 할 일을 하는 바다 생물들, 그리고 거리낌 없이 바닷속 세상을 넘나드는 출연자들의 자유로운 몸놀림이었다.
'아,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수영을 배운 이유가 저곳에 있다. 바닷속 세계는 어떤 느낌일까? 신비롭고 눈부실까? 따뜻하고 온화할까? 아니면 막막하고 두려운 미지의 세상?'
"여보, 우리 프리다이빙 배워 보면 어때? 알아보니 초등 아이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더라."
꿈만 같은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 용기를 내야 할 시간.
프리다이빙을 배우고자 마음먹기까지, 아니 엄밀히 따지고 보면 수영을 배우기까지 쉽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형체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면어찌할 바를 몰라 덜덜 떨었던 기억이 주홍 글씨처럼 인치어 있기에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다.
'깊은 물 속은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곳일까, 암흑천지일까?'
이 물음을 품고 프리다이빙 트레이닝 센터 문 앞까지 왔다.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세차게 요동치지만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 큰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수영 배우러 갔던 첫날을 떠올리며 이 도전 또한 내 삶의 지평을 열어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럼에도 덜덜 떨려오는 마음과 몸.
'남편도 있고, 전문 강사도 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물에 빠져 죽게 놔두진 않을 거야.'
널찍한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프리다이빙 이론에 열변을 토하는 강사와 한 번씩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내 생각이 들키지 않으려고 경청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돌아갈 수 없어. 내가 하자고 가족들 다 끌고 왔잖아. 이 새벽에. 용기를 내봐.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할 수 없어......'
프리다이빙의 기본 개념 설명이 끝나고 안전사고 실전에 대한 설명이 본격적으로 들어가자가족들은집중의 눈빛으로 강사의 말끝을 따라갔다.
그리고 이제 5M와 10M 깊이의 프리다이빙 잠수풀 앞.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지만 깊이는 헤아리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물 속에 들어갔다.
첨벙
'꿈을 이루기 위해 여기 온 거야. 호흡 가다듬고. 정신 차리자.'
터질 것 같은 심장은막막해 보이던 물 안에 들어오니차차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잠수풀 안에는 새벽부터 스킨스쿠버, 프리다이빙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물 안은 고요했다. 오로지 나를 감싸고 있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물과 나만이 핀 조명 아래 있었다. 한 발 한 발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정신을 집중할수록 아늑한 물은 나를 더욱 안아주었다.
'너, 해낼 줄 알았어. 이제 힘을 빼고 위로 올라가는 거야.'
호흡이 끝나는 곳에 다다르자, 물이 온화하게 속삭였어. 이제 수면 위로 올라가서 큰 숨을 마셔보라고.
호흡 끝에 들어오는 공기는 달콤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 더 생겼다.
그동안 '아프지만 할 건 다 하고 살아요' 브런치 북을 사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 고민 끝에 이 글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치고자 합니다. 10편 정도의 글을 썼을 즈음, 저는 다시 수영장으로 복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여전히 어려움이 따르네요. 그래도 저에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 준 참 고마운 존재가 수영입니다. 다음 브런치 북에서는 이런 수영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합니다. 많은 응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몸도 마음도 아프지만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는 그대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