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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Dec 23. 2024

고양이 싫다던 남편이 고양이랑 같이 자요

이 남자 갱년기 아냐?

 남편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몇 날 며칠을 도란거렸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사람이 뜻을 접은  댕돌같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였던 거 같다. 냉철한 사람이지만 나한테는 한없이 약한 사람이니까.


 남편에게 동물이란 짐승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그런 존재였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남편은 마당에 개를 묶어 키웠다고 했다. 집에 드나드는 고양이도 여럿 있었는데 소유는 아니었다고 했다. 해가 들 땐 길바닥에 한참을 드러누워 있다가 배고프면 집으로 와서 먹을 것을 깨작거리다 사라지곤 했는데 그러다가 집 오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굳이 찾아 나서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집에 들 고양이를 매몰차게 대했던 건 아니다. 단지 사람들이 에게 과한 마음을 주고 금전을 쏟는 게 이해가 안 는 거뿐이라고 했다. 그랬던 남편이 달라졌다.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며칠 머문 적이 있다. 베리가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남편과 둘이 뎅그러니 집에 남아 있는 게 신경이 쓰였지만 고양이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베리는 잘 있어? 사료는 잘 먹어?"


 남편 일반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영상통화로 바꾸더니 자기 무릎 위에 앉아 있는 베리를 화면 한가득 보여주었다. 그 모습이 평소 남편답지 않아 '픽'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료를 먹긴 하는데 몇 번 토했어. 얘 어디 아픈 거 아닌가? 놀긴 잘 놀거든."


 사뭇 진지해진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크게 걱정할 건 없겠다 싶었다. 내 걱정은 남편이 베리를 잘 돌볼 수 있는지 없는지 있었므로.


 그 후에도 남편으로부터 몇 번의 전화와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베리가 더 이상 토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잔다며.


 남편의 강인했던 체력은 사십을 넘기며 서서 물러졌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소극적이었던 사람이, 발 벗고 맘 맞는 동료 직원을 찾아 나서 산행팀을 앞장서서 꾸려가기도 했다. 


 '사람이 이렇게 변하나? 이 남자 갱년기 아냐?'


 어느 날은 자기만의 동굴에서 심드렁히 쇼츠를 보다가 이내 드르렁거리 모습이 마치 면에 빠진 곰 같기도 했고, 어느 날은 시콜콜 이야기하고야 마는, 오지랖 넓은 옆집 언니 같아 보였으니 이 사람 몸에도 호르몬 변화가 시작되었구나 싶어 애잔하기까지 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농사짓는 부모 아래 태어나, 일은 죽어라 하는데 돈이 되지 않는 농사일은 죽어도 못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공부하여 거둔 결실이었다. 냉한 심장을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에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런 남편이 변했다!


 "침대에 고양이 못 올라오게 해. 이불에 털 묻는 거 질색이야."


 태생적으로 눈치를 장착하지 못 베리는 침대에 자주 오르락내리락했다. 여러 번 내쫓았지만 소용없었다. 보란 듯이 남편보다 먼저 침대에 올라 잠들기도 했다. 눈치 없는 녀석이 끈기는 있었다.


 갱년기에 접어들며 마음의 허들이 낮아진 남편은 더 이상 이 미물에게 모질게는 못 하겠는지 동침을 허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베리와 함께 잠들었고, 녀석이 침대에 있지 않으면 먼저 찾아 나서는 기이 현상까지 발생했다.


 "베리야, 아빠 왔다. 이렇게 고 있으면 우리 애들 어릴 때 생각 나."


 퇴근 후 집에 도착한 남편은 베리와 눈 마주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할아버지가 손주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베리는 그런 남편을 졸졸 따라다녔다.


 개에 관심 없던 지인이 느닷없이 개 한 마리를 분양받았다며 귀여운 시츄 사진을 톡으로 보내왔다. 남편 갱년기에 도움이 될까 해서 키우게 되었다는 말과 함께.


 우리 남편만 격변의 시기를 겪는 게 아니구나 싶어 자못 마음이 쌉싸름해졌다.


고양이 최난이도 손톱깎이 담당인 남편


 젊은 날의 혈기가 사그라든 자리에 은은한 온기로 채워져 가는 남편의 인생 제2막을 응원한다. 그리고 기대한다. 베리가 그의 소울메이트가 될 것이다. 물론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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