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몇 날 며칠을 도란거렸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사람이 뜻을 접은 건 내 댕돌같은 마음에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였던 거 같다. 냉철한 사람이지만 나한테는 한없이 약한 사람이니까.
남편에게 동물이란 짐승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그런 존재였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남편은 마당에 개를 묶어 키웠다고 했다.집에 드나드는 고양이도 여럿 있었는데 소유는 아니었다고 했다. 해가 들 땐 길바닥에 한참을 드러누워 있다가 배고프면 집으로 와서 먹을 것을 깨작거리다 사라지곤 했는데 그러다가 집에오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굳이찾아 나서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집에 들른 고양이를 매몰차게 대했던 건 아니었다.단지 사람들이 짐승에게 과한 마음을 주고 금전을 쏟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거뿐이라고 했다. 그랬던 남편이 달라졌다.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며칠 머문 적이 있다. 베리가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남편과 둘이 뎅그러니 집에 남아 있는 게 신경이 쓰였지만 고양이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베리는 잘 있어? 사료는 잘 먹어?"
남편은 일반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영상통화로 바꾸더니 자기 무릎 위에 앉아 있는 베리를 화면 한가득 보여주었다. 그 모습이 평소 남편답지 않아 '픽'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료를 먹긴 하는데 몇 번 토했어. 얘 어디 아픈 거 아닌가? 놀긴 잘 놀거든."
사뭇 진지해진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크게 걱정할 건 없겠다 싶었다. 내 걱정은 남편이 베리를 잘 돌볼 수 있는지 없는지에 있었으므로.
그 후에도 남편으로부터 몇 번의 전화와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베리가 더 이상 토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잔다며.
남편의 강인했던 체력은 사십을 넘기며 서서히 물러졌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소극적이었던 사람이,발 벗고맘 맞는 동료 직원을 찾아 나서며산행팀을 앞장서서 꾸려가기도 했다.
'사람이 이렇게 변하나?이 남자 갱년기 아냐?'
어느 날은 자기만의 동굴에서 심드렁히 쇼츠를 보다가 이내 드르렁거리는 모습이 마치 동면에 빠진 곰 같기도 했고, 어느 날은 시시콜콜 이야기하고야 마는, 오지랖 넓은 옆집 언니 같아 보였으니 이 사람 몸에도 호르몬 변화가 시작되었구나 싶어 애잔하기까지 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농사짓는 부모 아래 태어나, 일은 죽어라 하는데 돈이 되지 않는 농사일은 죽어도 못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공부하여 거둔 결실이었다. 냉혈한 심장을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에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런 남편이 변했다!
"침대에 고양이 못 올라오게 해. 이불에 털 묻는 거 질색이야."
태생적으로 눈치를 장착하지 못한 베리는 침대에 자주 오르락내리락했다. 여러 번 내쫓았지만 소용없었다. 보란 듯이 남편보다 먼저 침대에 올라 잠들기도 했다. 눈치 없는 녀석이 끈기는 있었다.
갱년기에 접어들며 마음의 허들이 낮아진 남편은 더 이상 이 미물에게 모질게는 못 하겠는지 동침을 허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베리와 함께 잠들었고, 녀석이 침대에 있지 않으면 먼저 찾아 나서는 기이 현상까지 발생했다.
"베리야, 아빠 왔다. 이렇게 안고 있으면 우리 애들 어릴 때 생각 나."
퇴근 후 집에 도착한 남편은 베리와 눈 마주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할아버지가 손주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베리는 그런 남편을 졸졸 따라다녔다.
개에 관심 없던 지인이 느닷없이 개 한 마리를 분양받았다며 귀여운 시츄 사진을 톡으로 보내왔다. 남편 갱년기에 도움이 될까 해서 키우게 되었다는 말과 함께.
우리 남편만 격변의 시기를 겪는 게 아니구나 싶어 자못 마음이 쌉싸름해졌다.
고양이 최난이도 손톱깎이 담당인 남편
젊은 날의 혈기가 사그라든 자리에 은은한 온기로 채워져 가는 남편의 인생 제2막을 응원한다. 그리고 기대한다. 베리가 그의 소울메이트가 될 것이다. 물론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