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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Dec 16. 2024

고양이 합사가 뭐길래

인간들아, 서열 좀 그만 세우라옹

 베리가 집에 오고 한 달에 루이도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고양이의 영역 다툼은 생사를 건 문제라고 묘생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보아 익히 알고 있었다. 나의 고민은 자연스레 두 고양이의 서열이 잘 정리되어 평화로운 합사가 이른 시일에 가능할지에 쏠렸다.


 루이가 집에 온 첫날,

 미리 준비해 은 고양이용품이 마련된 작은 방에 루이를 데려다 놓았다. 루이를 처음 본 베리는 기한 듯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는 빤히 쳐다보았다. 경계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은근슬쩍 서로의 체취와 모습을 오가며 느낄  있도록 루이가 있는 작은 방문 앞에 플라스틱 펜스를 설치해 뒀다. 호의적인 베리의 모습과는 달리 베리의 형체만 보이면 도로 긴장하고 하악질을 연신 해는 루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너는 또 누구야? 눈을 왜 그렇게 크게 뜨는 거야? 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거냐고. 무섭게. 저리 가. 빨리.'


 작은 방에 놓인 거울  자신의 모습에도 화들짝 놀라는 루이가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베리와는 일단 거리를 두게 하였고, 루이 불편한 건 없는지, 배고프진 않은지 수시로 들여다보며 살뜰히 챙겨주었다. 진심 닿았는지 며칠 만에 루이는 마음 문을 열고 나만 보면 그 자리에서 골골송을 불러주었다. 그러고는 슬며시 무릎 위에 올라와 고개를 파묻고 정성스러운 꾹꾹이 마사지를 해주었다.


 '고마워요. 난 엄마가 없는 줄 알았는데 당신이 내 엄마 고양이였네요.'


 엄마의 사랑을 등에 업고 루이는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기심 가득한 베리의 눈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작은 방이 답답하다며 나가고 싶다는 신호까지 보냈다.


 드디어 루이와 베리가 만는 날!


 평화를 찾기 위한 만남이 오히려 전쟁 같은 만남이 되는 건 아닐지 가슴을 콩닥지켜보았다. 아니, 그런데 웬일인지 두 고양이는 내 걱정는 달리 침착했고 다정하기까지 했다.


 '괜히 오해했잖아. 네 눈은 원래 크구나. 너 꽤 귀엽게 생겼다.'


 '저 덩치 큰 엄마 고양이가 맛난 것도 주고 친절해. 걱정하지 마. 나는 너랑 놀고 싶어.'


 루이와 베리 사이에 서열이란 없었다. 음이 맞으면 잘 놀다가도 틀리면 투닥거리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알게 모르게 스며든 서열의 세상

 딸아이가 갓 3학년이 되어, 초등 인생 처음으로 반장 선거를 끝내고 집에 돌아 날이었다.


 "엄마, 나 포함해서 네 명 빼고 다 반장 선거 후보로 나왔더라. 반장은 4표로 됐어."


 반 전체 23명 중에 19명이 후보였다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나 때와는 확연히 다른 요즘 학 분위기적잖이 놀라웠고, 저 많은 아이들이 정말 다 반장이 되고 싶어서 공약서를 쓰고 준비했을까 싶어 씁쓸한 마 동시에 밀려들었다.



 서열

 일정한 기준에 의해 순서대로 늘어 상태.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 가운데 깊이 스며든 순서 너와 나를 구분 지어 우리를 가르고, 우위에 있지 않으면 불안하게 만든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가정에서도.


 루이, 베리의 서열 관계가 잘 정리되어 안전하고 온전한 환경을 빨리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루이, 베리의 합사 과정을 지켜보며 과연 서이 생겨야 평화가 찾아오는 건지 의구심이 들다.


 엇을 위해 우리는 그토록 서열을 세우고 있을까?

 서열 우리를 온전한 평화로 이끌어줄까?



 '순서를 세우지 않아도 잘 지낼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깊 생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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