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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Dec 09. 2024

고양이가 사람 말을 해요

야옹 소리를 내지 않는 고양이라

 옹알이를 하던 아기는 생후 1년 즈음, 힘겹고도 감격스러운 단어를 내뱉는다.


 '엄. .'


 두 음절에 담긴 의미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사물과 사람을 구분하고, 특정 단어에 담긴 뜻을 인지하여 아기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인 엄마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엄마'란 단어 속에 담겨있다. 그 후로 아기의 언어와 사회 인지적 발달은 급속도로 이루어진다.


 "어.. 엉... 마.. 아"

 "어.. 엉... 마.. 아"


 '내가 뭘 잘못 들은 건가? 분명 '엄마'라고 하는 거 같은데.'


 베리가 처음 내뱉은 말은 '야옹'이 아니고 어처구니없지만 '엄마'란 단어였다. 처음 한두 번은 어쩌다가 그렇게 발음이 됐겠거니 생각했지만  베리는 그 후로도 야옹 소리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야옹 소리를  않는 이라..'


 뭔가 요청할 일이 있을 때, 불편하거나 기분이 좋을 때, 어느 순간에서든 베리는 줄곧 엄마만 찾았다. 편은 그런 베리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갈 법한 일이라며 신기해했다.


 여기 야옹 소리를 못 내는 고양이가 한 마리 더 있는데 바로 루이다. 루이는 자기가 필요한 순간에 딱 한 마디 한다. "네?"라고. 야옹 대신 네라니.


 '야옹 소리를 안 내는 건지, 못 내는 건지...'


 고양이는 생후 12주 전에 사회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진다. 엄마 고양이와, 형제 고양이에게 고양이답게 살아가는 법을 습득한다. 사냥하는 방법, 몸을 청결히 하는 방법, 누가 적인지 친구인지 구별하는 방법.


 고양이다운 언어와 방식을 배워야 할 때 루이와 베리는 나를 만났다. 야옹 소리를 못 하는 고양이가 된 건 엄마에게 고양이 화법을 배울만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은 아지. 태어나자마자 다른 이의 손에 이끌려 작은 유리 진열장에 전시된 채 그곳에서 구원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을 놓친 건 아닌지. 다른 이들이 신기해하는 두 고양이의 언어는  마음을 후벼 팠다.


 

 

 길든다는 것. 


 누군가에게 길든다는 건 서로 관계를 맺 친밀해지는 너와 내가 된다는 것. 멀었던 거리 이내 좁혀져 무의미는 의미가 되고, 특별한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


 무의미가 의미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할까?


 마땅히 길들어야 할 것에 익숙해지지 않은 채 나를 만난 루이와 베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간 생활에 들어오게 됐다. 조금씩 조금씩 이 세계로 마음의 발을 내디뎠을 루이와 베리. 리고 이 세계에 길들 위해 수없이 관찰하고 되뇌었을 그 단어.


 '인간 엄마에게 인간 아이들이 엄마라는 말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는구나. 나도 한 번 연습해 봐야겠다. 엄. 마. 엄. 마. 어.. 엉.. 마.. 아'

 

 많은 날을 마음으로 읊조리던 언어는 마음 밖으로 흘러나와 하나의 의미가 되었다. 너에게 든다는 건, 너의 방식을 존중하고 맞춰가고 싶어 너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  


 

 마침내 터져 나온 단어. 엄. 마.

 비록 고양이 언어는 잊지만 여러 날의 수고로 얻어진 인간의 언어.


 다른 이에게 하나의 의미가 되기 위해 나는 그들의 언어를 얼마나 이해하려고 애써봤는지. 나와 맞지 않는 이가 보이면 마음의 선부터 긋고 시작하진 않았는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언어로만 살아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갑자기 아득해지는 이 기분.


 루이, 베리가 배워 익힌 인간 언어로 고양이가 아닌 건 아니듯이, 내가 다른 이의 언어를 익힌다고 나를 잃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다른 이의 언어를 익히게 된다면 나는 그의 특별한 의미가 될 것이다. 루이, 베리가 그랬듯이 말이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네가 날 길들이면 우린 서로 필요해진단다.

우리는 자기가 길들인 것만 진정으로 알 수 있어.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인내심이 필요해. 언어는 오해를 낳거든. 그래도 날마다 내게 조금씩 더 가까이 와서 앉아.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야.

-어린 왕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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