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친정이 있어 다행이다.
친정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문득 그랬다.
"엄마가 손녀를 많이 보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라는 말은 그저 핑곗거리였다. 실은 나의 에너지가 다 고갈되어 버린 것 같아서였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매주 공방 이사로 바쁜 날들을 보낸다. 나는 나를 돌볼 새도 없이 아이를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다 어느 날 입술이 터졌다. 무리를 하면 나는 곧잘 입술이 터지곤 했다. 그날은 두통과 근육통이 겹쳐 왔다. 그렇게 아팠던 그날 생각했다. '친정을 가야겠다'라고.
아이를 돌보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면서도 체력적으로 지치고 힘든 것까지 막을 도리가 없다. 매일 아이를 위해 집에서 마스크를 쓰고 지냈다. 불편했지만 아이에게 혹여 전염될까 잘 때도 마스크를 썼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조금씩 나아지는 듯 하자마자 나는 친정을 찾았다. 친정집에 들어서자마자 들은 첫마디.
" 입술이 왜 그래, 왜 다 터졌어."
"피곤했나 보네 입술이 다 터지고"
현관에서 신발도 채 벗기 전에 들은 걱정의 말.
아, 이 말이 듣고 싶었나 보다. 나를 걱정하고, 나를 쓰다듬는 말, 손, 눈빛. 이 것이 받고 싶어서 여길 왔나 보다. 나를 걱정하는 그 말은 나를 돌보는 말, 나를 걱정하는 그 말은 나를 위로하는 말이다. 그 말들은 나를 꼭 안아준다. 손이 없어도 그렇게 나를 보듬고 감싼다. 그곳에서 나는 언제나 아이이고 딸이고 사랑의 대상이다. 누군가에게 언제까지고 아이처럼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의 삶에서 커다란 위안이 된다. 커다란 안식이 된다.
엄마가 차려 준 밥상을 맛있게 먹고, 아이의 재롱을 보며 다 함께 한바탕 웃고, 아이를 엄마에게 잠시 맡기고 낮잠도 잤다. 충전. 그렇게 가득 충전을 하고 돌아왔다.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아니 여자에게 친정이 어떤 곳인지. 친정이 이런 곳인지. 아이를 낳고, 친정이란 곳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결혼 후 느낀 친정과 아이를 낳고 느끼는 친정은 다르다. 여자에게 친정은 그때부터 진정으로 특별해진다.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 후 엄마를 다시 보고, 아빠를 새롭게 느끼고 나니 친정은 더 애틋해지고 더욱 그리워졌다. 그곳은 힘이 드는 날이면 더 간절해졌다. 아플 때 먹은 알약 한알보다, 지친다고 마시는 맥주 한 캔보다 훨씬 위력이 세다. 결국 사람에게 나를 사랑해 주는 부모의 품보다 더 큰 안식은 어디에도 없다.
내게 돌아갈 수 있는 친정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나의 기댈 곳, 나의 쉴 곳.
나의 감사는 늘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