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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Oct 09. 2020

나눔을 배운다.

선한 쪽으로 한걸음

며칠 전 정리한 아이의 작아진 옷을 기부할 곳을 찾는 중 좋은 곳을 안내받았다. 안내받은 곳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이다. 홈페이지로 들어가 물품 기부를 꼼꼼히 살펴보니 아이 옷도 받는다고 기제 되어있었다. 그러나 일전에 기부하려고 했던 곳도 이전에는 받은 듯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택배 물품을 당분간 받지 않는다는 뜻을 전달받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접 문의를 했다. 다행히 아이의 옷을 받겠다고, 감사하다고 해주셨다. 아직 옷도 보내지 않았는데 벌써 마음이 쨍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오히려 내가 감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쁜 마음으로 아이의 옷을 다시 살펴보며 택배박스에  차곡차곡 담았다. 제법 큰 박스 두 개를 가득 채웠다. 깨끗하고 쓸만한 옷만 담는다고 담았지만 혹시라도 받았을 때 불쾌하지 않을까 살펴보고 또 점검했다. 받았을 때 기뻤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뭐 이런 걸 보냈나’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것들만 신경 써서 보내주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따뜻했으면 좋겠다.


오래전 한 아이를 후원한 적이 있다. 처음 후원을 하기 위해 그동안 결식아동 후원을 해 오던 사이트로 들어가 한 아이 후원을 찾아보았는데, 어떤 아이를 후원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간단하게 아이의 사진과 개개인의 사연들이 나열되어있었는데 마우스로 후원하기를 클릭하면 후원자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아이를 후원하면 좋을지 페이지를 쭉 둘러보았다. 남자아이도 있고 여자아이도 있었다. 아주 어린아이부터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스크롤 바를 내리면서 둘러보는데 불현듯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스쳤다. 후원을 한답시고 아이들을 고르며 마치 쇼핑이라도 하는 형국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혐오감마저 들었다. 얼마나 스스로에게 실망했던지 얼마나 부끄럽던지 누구에게 이런 나의 모습을 들키기라도 한 듯 가슴이 쿵쿵하고 뛰었다. 나는 스크롤바를 위로 올려 가장 위에 있던 아이를 후원했다. 다른 누군가도 차례대로 후원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아이들의 사정을 꼼꼼히 읽고 가장 후원이 필요한 아이는 누구일까 하고 나름 고민하려는 의도였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곳에 올려진 모두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그런 고민은 애초에 불필요한 것이었다. 후원하던 아이와는 내가 결혼을 하고 후원계좌를 착각해 내 계좌를 정리하며 후원이 끊어졌고 여러 달이 지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재단에 문의했으나 이미 끊어져 다른 아이에게 후원하셔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뒤로는 그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마음이 괜히 무거워져 국내 결식아동 후원만 이어오고 있다.


내가 보내는 단돈 만원, 이만 원이 누구에게는 간절한 것이라는 게 늘 마음이 아프다. 작지만 그 정성이 고스란히 필요한 곳에 닿으면 좋으련만 그 또한 장담할 수 없다. 믿었던 후원단체의 비리가 폭로되곤 할 때마다 마음이 뻥 뚫려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어딘가엔 나보다 더 선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믿고 안일하게 살다가 배신이라도 당한 기분이랄까. 나서지 않고 멀찍이 서서 나 대신 누군가 애써주겠지 하며 마음의 짐만 조금 덜어보려는 얄팍한 마인드로 살다가 느끼게 되는 미안함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누구도 후원하지 않거나 어디에 단돈 만원이라도 보내지 않으면 마음이 무겁다. 그러면서도 한 아이를 후원하며 그리고 그 후원이 끊어졌을 때 느낀 죄책감과 의무감이 너무 묵직해서 이 또한 선뜻 나서지 못하게 되어버린 참으로 아이러니한 참으로 초라한 마인드. 그러나 그런 감정에 무뎌지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와 나누는 일에 작은 책임감 또는 부채감, 때로는 죄책감 혹은 간절함들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우리의 마음이 그런 방향을 놓지 않도록 무뎌지지 않도록 신경 쓰고 돌보아야 한다고 말이다.


작은 박스에 아이의 옷을 담아 보내며 생각이 많아졌다. 누군가와 나누며 산다는 것. 대단히 넘치게 살지 않지만 가진 조그만 것의 한 조각을 움켜쥐지 않고 내어 주며 산다는 것은 무엇이기에 이토록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되는 걸까. 무엇이 나의 마음을 이토록 충만하게 하는 걸까. 때어주었는데 어째서 더 풍요로워지는 걸까.


어쩌면 이러한 행위는 대가 없는 친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보내는 쪽의 마음을 이토록 어루만져 준다는 것은 내 인생을 선한 쪽으로 한걸음 옮겨 놓는다는 것은 실로 내가 바라는 삶의 방향이자 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의 행위는 부끄럽게도 오롯이 나를 위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잠깐의 숨 고르기를 한다. 이쯤에서 잠시 나의 삶의 결을 돌아보아야겠다. 나는 내 삶을 어떤 결로 채우려 하는지, 어떤 색으로 물들이고 싶은지, 무엇을 나누며 무엇을 취하며 살 것인지 나의 마디마디를 들여다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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