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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Oct 08. 2020

엄마의 열두달치 반성문

딸의 돌, 그 언저리에서


우리는 간절하고 또 간절했다. 난임을 겪어 본 부부라면 누구나 그렇듯, 유산을 한 번이라도 경험 한 여자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우리에겐 그 어떤 감정도 틈탈 수 없었다. 오직 간절함만이 깊숙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렇게 얻은 아이었다. 나의 3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내어주고, 나의 3년간의 행복을 온전히 내려놓고, 나의 3년만큼의 젊음을 보내고, 임신과 유산을 반복하면서, 그 행복과 불행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숨죽여 꼬박 10달을 기다려 얻은 내 아기. 우리 아기.


아직도 생생하다. 아기를 처음으로 품에 안았던 때가. 내 몸을 빠져나온 생명의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밀려오던 졸음에 정신을 놓은 그때가. 작고 작은 손을 만져보고, 작디작은 생명이 부서질세라 조심히 안아보던 그때의 그 공간의 공기, 그 냄새와 기운. 그리고 분위기까지. 2월의 차가운 기운과 히터의 뜨끈하고 탁한 공기가 동시에 느껴지던 병실과 몽롱했던 정신과 조금은 상기된 얼굴을 한 남편의 모습도 세세하게 기억한다. 밤새 울어대던 아이 그리고 졸린 눈꺼풀을 들며 애쓰던 서툴디 서툰 우리 둘. 모든 것이 하나도 잊히지 않은 채로 또렷하다.


그렇게 1년, 

익숙해져 버렸나. 이 기적 같은 일을 겪고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자 망각의 생명체였다.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그리고 불편하고 건조했던 좁은 병실에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또 얼마나 애틋했었나. 나에게, 우리에게 와 준 아기를 이제는 보고, 만지고, 안고,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것, 오직 그것만으로 눈물겹게 감사했던 그때의 우리는 어디에 있나.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이 ‘육아’라는 단어로 쓰여지면서 그것은  ‘일’이 되어버렸다. ‘육아’라는 굴레 안에서, 그저 대수롭지 않은 일이며 피곤한 일이고 귀찮음을 이겨내야 하는 매일 똑같이 이어지는 퇴근이 없는 업무로 치부되어버린다.

나는 때때로 감사했고, 때때로 눈물 나게 소중했으며 때때로 순간을 행복하게 느꼈지만, 때때로는 화가 났고 때때로 서러웠으며 때때로 익숙함에 소홀했다. 그렇게 ‘감사’는, ‘간절함’은 느슨해져 갔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기적이었고, 나의 꿈이자 단 하나의 소망이었다.

불행을 뚫고 기적을 만난 나는, 애쓰지 않아도 부족하고 조금 서툴러도 사랑 하나로 충분하다는 것을 종종 잊어버린다. 너무 애쓰고 애쓰다 지쳐버리고 부족한 엄마로 보이기 싫어서 도리어 화를 내고 만다. 오래 기다렸기에, 누구보다 간절했기에 그저 그 고난을 이겨 낸 것만으로 좋은 엄마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 나는 분명 남들보다 더 괜찮은 엄마가 될 줄 알았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좋은 엄마란 공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거저 주어지는 것이, 누가 내어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만나기 위해 오래 기다렸다고 해서 하늘에서 불쌍하니 이걸 받으라며 뚝 떨어뜨려 내게 주는 것이 아니다. 애쓰고 애써서 오직 내 안에 있는 괜찮은 사람을 이끌어 괜찮은 엄마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 온전한 내 몫이었다.


나의 감사가 깃든 하루와 또 하루의 겹겹, 아이를 온전하게 바라보는 시선의 마디마디, 더 괜찮은 인간으로 살아가려는 삶에 대한 선한 기운. 이 모든 것이 좋은 엄마의 마음을 한 줌 덜어 내게 더하는 최선의 길이자 유일의 방법이었다.


이렇게 아이의 돌을 맞이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이며 어설픈 엄마인지를 인정하고 만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데 나는 다른 채 하고 있었다. 괜찮은 엄마인 척, 이미 좋은 엄마가 된 척하고 앉아 나의 그 어설픔을 한없이 부족함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인정하고 돌아보지 못한 시간 동안 나는 나를 미워했고, 왜 이것밖에 못하냐 자책하고 실망하며 아직 덜 고른 마음밭을 미워하는데만 온 시간을 다 써버렸다. 그러는 사이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자갈돌로 가득한 밭에 심긴 씨앗이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듯이 무엇이든 심기워져 그 꽃과 열매를 보려 한다면 반드시 씨앗을 떨어뜨리기 전 밭을 헤집고 다시 일구는 기나긴 인내와 정성이 담긴 노동의 시간을 건너뛰면 안 된다. 그 시간을 게을리하고선 아름다운 꽃과 탐스런 열매를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처음 엄마’라면 누구에게나 그 인정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 마음밭이 옥토가 아님을 인정하는 시간.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과정이 있고 또 그 시간들을 성실과 꾸준함으로 결실을 맺어가는 축적된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벼락 같이 시작되는 육아에 완벽히 준비된 엄마는 누구도 어디에도 없으리라.


나를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자기기만에 빠져 솔직하지 못했던 시간을 반성한다. 앞으로의 나의 ‘엄마 생활’을 위해 그리고 아이와 함께 엮어갈 인생을 위해.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때라야 비로소  더 좋은 나를 만날 수 있으며 더 좋은 나를 만남으로 비로소 엄마의 길도 논 할 수 있게 되리라.


소중한 감정을 잊어서는 안 되는 애틋하기만 한 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는 것. 익숙함에 지지 않고, 사소함을 사소한 것으로만 치부하지 않는 것. 요즘 내가 사는 매일이 얼마나 누리고 싶어 했던 애달픈 일상인지를 기억하는 것. 그리고 힘껏 사랑하는 것. 사랑만 하는 것.


어설프게 좋은 엄마 흉내 그만 내고, 진실로 괜찮은 인간이 되어보는 것. 그렇게 아이에게 한 줌 더 좋은 인간으로 괜찮은 엄마의 길을 밟아보는 것.


- 딸의 돌, 그 언저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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