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친밀해진 밤
내 딸은 나와는 많이 닮지 않았다. 원래 딸은 아빠를 더 많이 닮은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어딜 보아도 닮은 구석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입을 좀 닮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어서 ‘하나도 안 닮은 것보단 낫네.’하고 괜한 위안을 해보기도 했다. 누굴 닮아도 상관없다 생각했고 내가 거기에 집착하리라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조금은 아주 조금은 섭섭하달까 허탈하달까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만 더 닮아주지.’하고 애꿎은 아이를 원망스레 바라본다. 내 속에서 나왔는데 나를 하나도 닮지 않았다니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싶었다.
어릴 적부터 유독 마르고 작아서 엄마의 걱정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온 나와는 달리 우리 딸은 어깨가 떡 벌어지고 허벅지가 튼실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갓난쟁이일 때부터 친구들에게 “애가 너한테 너무 버거워 보여.”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아이 치고는 몸무게도 머리둘레도 유독 컸기에 마르고 작은 내겐 그 작은 아이도 버거워 보였던가보다. 내 손톱은 참 못났는데 그래서 네일을 해도 뭉툭하니 이쁘지 않은 손톱인데 우리 딸 손톱은 참 예쁘다. 그런 손톱을 가져보지 못한 여자로서 탐이 날 정도로 태어날 때부터 오목하니 길쭉하니 이뻤다. 이마는 아빠 쪽 가족들을 똑 닮아 삼자 이마. 일명 갈매기 이마이다. 나의 동그란 헤어라인 역시 물려주지 못했다. 쌍꺼풀 없이 축 처진 눈매 하며 둥그런 콧방울 하며 두툼한 귓불까지 아빠를 똑 닮았다.
꼭 미운건 닮는다 했던가. 남편의 피부는 하얀 편이다 남편의 누나를 보아도 하얀 피부를 가진 걸 보면 아마 남편의 집안이 대체로 하얀 편인 듯하다. 그에 반에 우리 집은 대체로 까무잡잡하다. 노란빛이 도는 까무잡잡한 피부. 그런데 아이의 피부색이 나를 닮았다. 여자라면 누구나 살면서 ‘내 피부가 좀 더 하야면 좋겠다.’라고 한 번쯤은 생각할 텐데 나도 늘 그런 맘을 가졌었는데 딸에게 내 콤플렉스를 물려주었다. 분명 선택지는 두 개였을 텐데 어째서 그런 것만 쏙 물려받았을까.
정말 물려주지 않아서 다행인 것도 하나 있다. 피부색보다 훨씬 오랫동안 나에게 콤플렉스를 안겨준 것, 바로 발가락이다. 엄지발가락이 유독 짧은데 두 번째 발가락은 또 유독 길다. 그래서 엄지발가락이 더욱 짧아 보인다. 발볼도 넓어서 구두를 신을 땐 좁은 구두 볼이 발 전체를 짓눌러 오래 신고 있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미운 발가락 때문에 발이 보이는 샌들을 고를 때는 정말 괴로웠다. 그래서 20대 중반까지는 발이 보이는 신발을 아예 신지 안으려고 했었다. 슬리퍼조차도. 늘 내 발이 흉하다고 생각했고 볼품없다고 여겼다. 20대 후반부터는 그런 콤플렉스에서 많이 벗어나 발가락이 보이는 샌들을 신기도 했지만 누군가 발가락에 대해 주목하는 이야기를 꺼내면 그 사람이 그렇게도 미웠었다. 그래서 뱃속에 있는 아이의 정밀초음파 사진을 볼 때도 발가락을 가장 먼저 확인했었다. 아이의 발가락은 다행히 아주 예쁘다.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신발을 고를 때마다 엄마를 원망하는 일은 없겠네 싶어서.
그렇게 우리 아이가 나를 닮은 것을 굳이 찾자면 피부색 정도겠다. 남편은 워낙 흰 사람이니 그건 분명 날 닮은 게 확실하다.
어느 날엔가 친정엄마가 아이의 걷는 모습을 찬찬히 보더니 “ 뒤꿈치가 널 닮았네” 하신다. 발가락은 너를 닮지 않았는데 뒤꿈치가 흡사 자기 딸이라는 것이다. 참 우습기도 하지. 뒤꿈치를 닮다니. 얼마나 자세히 보아야 뒤꿈치의 닮음을 찾아낼 수 있을까 얼마나 사랑해야 뒤꿈치를 기억할 수 있을까. 그걸 어느 누가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모를, 아무도 몰랐을, 그곳. 뒤꿈치.
엄마는 아는 뒤꿈치. 엄마만 아는 뒤꿈치.
"말도 안 돼. 무슨 뒤꿈치가 닮아."라고 하면서도 나는 내 아이의 뒤꿈치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바쁜 그 귀엽고 앙증맞은 포도알 같은 뒤꿈치를 쫒았다.
다들 뒤꿈치는 똑같이 생긴 줄로만 알았다. 발가락 생김새는 보아도 뒤꿈치에도 생김이 있다고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뒤꿈치가 생김이 있구나 싶기도 했다. 자세히는 몰라도 뭉툭한 뒤꿈치도 있고 뾰족하게 모인 뒤꿈치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의 말이 우습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뭘 그런 걸 봐, 뭘 그런 걸 기억해."라고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하얘진다. 마음밭에 햇살이 내려앉는다. 사랑받았던 기억 때문이리라. ‘나 사랑받았었구나. 엄마는 나를 많이도 사랑했구나.’ 하는 감정이 마음을 따스하게 데웠다. 자꾸만 피식하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 새끼와 닮은 구석을 하나 찾은 것보다 내가 엄마에게 사랑받았던 시절을 만나게 되어 기뻤다. 그 사실을 마주한 것만으로 스스로가 충만하게 채워진다.
나와 발 뒤꿈치가 닮은 내 아이와도 어린 시절의 내 뒤꿈치를 기억하는 엄마와도 한층 친밀해진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