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해'란 말은 진심일 수밖에
어느 날 아침,
아이가 걸걸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정말 그날 아침부터였는데, 밤엔 열이 올랐다. 처음이었다. 아이가 아픈 것은.
아이는 병치레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가끔 콧물을 흘릴 때도 있었지만 병원에 가면 약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지켜보면 낫는다고, 그러면 어김없이 괜찮아지곤 했다. 갑자기 시작된 기침이 열의 시작일 될지 그 끝이 기관지염과 후두염 일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나였다. 아기가 돌이 지나면 엄마에게서 받은 면역력이 다 소진해 아프다고 했다. 그걸 보통 돌치레라고 부르는데 나는 말만 믿고 아이가 돌이 지나야 아픈 줄 알았다. 돌이 지나기 전에 아플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안일했다. 겨울학기 문화센터는 감기 걸리기 딱 좋으니 한 학기 거르라는 친구의 말을 흘려들은 탓일까, 외출할 때 옷이 너무 두꺼우면 불편하다는 생각에 조끼하나 입혀 다닌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너무 일찍 모유를 끊으려 한 탓일까. 아이와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생경한 고통을 맛보게 되었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몇 배는 더 분주해진다. 목이 아파 삼키는 것이 싫은지 먹이는 족족 뱉어 내는 아이, 입맛이 없는지 좋아하는 것도 몇 조각 먹고는 금세 짜증을 내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것부터 아이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정신없이 주방을 누빈다. 뭐라도 먹어줄까 쉴 새 없이 그 작은 입에 이것저것 넣어본다. 대부분이 실패로 끝나지만 홀쭉한 배를 보면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서, 또 무언가를 삶고 끓여댄다.
그뿐이겠는가,
하루에 두세 번은 토해대는 덕에 옷을 갈아입히고 씻기고 닦이고. 그러다 보면 빨래 바구니에 수북이 쌓인 아이의 수건과 옷가지들. 하지만 정리는 미루어 둔다. 아픈 아이는 내내 엄마가 곁에 있어주기를, 안아주기를 간절히 도 원하기 때문이다. 싱크대엔 그릇이 쌓이고 빨래 바구니엔 빨래가 쌓이고 보통날엔 틈틈이 하던 일들이 아이가 아프니 아무것에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아이는 자주 울었고, 자주 짜증을 냈으며, 더 자주 내게 안겨있었다. 그렇게 예민한 상태의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일은 초보 엄마에겐 난이도 최고치의 일이다. 처음으로 아이에게 약을 먹이며 우리 아이가 약을 잘 받아먹는 아이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런 행운은 없었다. 발버둥 치며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강하게 쥐고, 입안에 약을 강제로 넣는 일은 정말 최악이었다. 이 약을 먹지 않으면 나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앙 물어보지만, 견디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아이가 울다, 또는 기침을 하다 약을 다 토하는 날은 눈앞이 컴컴하다. 다시 먹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리가 하얘진다.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건, 아이의 토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울컥울컥 하얗고 투명한 것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옥이었고, 토하고 축 늘어진 아이를 보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다.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저걸 내가 대신해 줄 수 없어서 너무 고통스러웠다. 아이가 웃으면 그 모습이 짠해서 아이가 울면 그 모습에 속이 상해서 모든 시간이 고통이다.
병원에서 기관지염이라며 지어 온 약을 먹이고 다른 병원을 찾았더니 이번엔 후두염이란다. 기관지염을 지나 후두염으로 온 것인지, 처음부터 오진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후두염이나 기관지염이나 비슷하다고 해도 나에게 병명은 너무나 중요했다. 정확히 알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알고 있어야 했다. 나는 엄마니까. 엄마니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내 아이가 어디가 아픈 것인지 정확히 알아야 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나를 돌 볼 수가 없었다.
열이 다시 오를까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기껏 해야 한두 시간 눈을 붙여도 아이의 기침소리에 깨고 나면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아이를 먹이느라 내 끼니는 거르기 일쑤였다. 나는 입안에 가시라도 돋친 듯 입맛이 없었고 무엇을 먹든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었다. 기껏 한 끼를 차려먹어도 라면을 끓여 후다닥 먹거나 그것마저 반쯤 먹고 버려지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허기조차 느낄 겨를이 없었다. 아이는 열이 오르지 않는 것 외엔 별다른 차도가 없고 나는 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굴었다.
아이가 아프니, 머리에는 폭탄이 마음에는 핵폭탄이 터졌다. 그 마음의 가시는 남편에 가 박혔다. 가시 돋친 말들을 쏟아냈다. 약을 먹이며 느꼈던 괴로움, 토하는 것을 치우며 받았던 고통을 남편에게 되돌려주려는 듯 나쁜 말 서운한 말들을 던진다. 나쁜 말들을 많이 쏟아낸 탓인지 오늘 아침엔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가시라도 박힌 모양이다.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이 가정에 평화가 오는 날은 아이가 온전한 컨디션으로 돌아오는 날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