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성장통
일주일이 넘게, 아이가 아프다.
아이의 생각으로 몸과 마음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내 몸도 신호를 보내왔다.
‘너를 함께 돌보렴.’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고, 나에게도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함께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생전 처음 해보는 병간호라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내가 쏟은 시간과 정성에 대한 보답은 바랄 수도 없었고, 아이는 날로 날로 상태가 나빠졌다. 기관지염이라 했다가 후두염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다시 후두염에서 기관지염으로 가고 있으며 더 안 좋아지면 폐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네블라이저 구입을 권하셨다. “지금 입원해도 입원병동에 다 폐렴 환자입니다. 그들 사이에 있어서 좋을 것 없겠죠.”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네블라이저를 로켓 배송으로 구입했다.
아이는 밤 시간 동안 기침도 덜하고, 잘 깨지도 않았으며, 더 이상 열도 나지 않았다. 낮시간 동안은 콧물 기침을 제법 하고 목이 여전히 쉬어있지만 잘 웃고 잘 놀았으며 밥 먹는 양도 조금씩이지만 늘어가고 있었다. 나는 괜찮은 줄로 알았다. 이제 나의 정성이 빛을 발하나 싶었다. 애틋하게 쏟은 마음이 보답을 받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나빴다. 아이의 상태가 더 나빠졌단다. 어째서. 나는 그 결과에 몸과 마음이 온통 헝클어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힘을 내지 않으면 안 되는데, 기압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 몸도 너무 아픈 탓이리라.
눈에 열감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어느 날 아침 목이 따끔대기 시작하더니 몸살이 왔다. 그러고는 콧물과 기침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코로 내쉬는 숨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아이의 다음 진료 날이 되어서야 나도 아이와 함께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감기에 단단히 걸렸단다. 나는 아플 틈이 없는데.
주변에서 나를 위로하며, 그런 말을 했다. 아이가 아프고 나면 많이 크더라는, 많이 자라려고 아픈가 보다고. 그러면서 아이들이 생각보다 잘 이겨낸다고도 했다. 무서웠다. 아이가 성큼 자랄 때마다 이렇게 아파야 하는 것일까, 아이가 자라면서 이런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할까, 누구나 성장을 할 때에는 ‘성장통’이라는 걸 겪는다. 신생아 시절 겪는 급성장통부터 이가 날 때의 이앓이. 더 자라서 키가 클 때 겪는 성장통, 여자아이의 가슴 몽우리가 잡히는 시기에도 우리는 얼마나 아팠던가. 신체의 성장뿐만 아니라 마음의 성장에도 성장통은 늘 있어왔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가치관과 생각이 바뀌는 변화에 우리는 ‘정신적 성장통’을 겪는다. 성인이 될 때에도 직장을 옮길 때도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고 적응하며 어쩔 수 없는 ‘마음성장통’을 겪는다. 결혼하며 또 이렇게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도 성장통은 반드시 있다. 지금의 나는 아이의 첫 아픔을 바라보며 말할 수 없이 괴로운 또 한 번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
어쩌면 아이도 자신을 감싼 딱딱한 껍질을 깨고 나오려 며칠째 성장통을 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달라진 것도 같다. 첫 박수를 쳤고,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하며 웃는 애교 섞인 동작을 보여주어 엄마 아빠의 마음을 녹였다. 손을 땐 채 잠시 서 있기도 하고, ‘안돼’하고 단호하게 말할 때에는 우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발뒤꿈치를 들고 높은 곳의 물건을 잡아당기기도 한다. 쓰고 보니 정말 많이 컸다. 부지런히도 자라고 있다. 모르는 새 그렇게 단단하게 영글어가고 있었다.
아이의 병간호는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고, 나는 아이와 함께 아프며 이 시기가 어서 지나가 주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는 더 자라기 위한 성장통을, 나는 아이의 병치레를 지켜보며 인내하는 삶과 가까워지기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아프게 자라나는 중이다.
우리는 ‘아프게 자라나기’를 반복하겠지.
아프게 자라나, 훨훨 날자. 어여쁜 겨울꽃을 피우자. 너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