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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엄마를 사랑하고 있어요.

오직 사랑.

by 한여름


아이를 기르며 언제나 사랑하는 쪽은 내 쪽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위해 애쓰고, 마음을 졸이고, 애정을 쏟는 쪽은 언제까지나 나뿐일 것이라고 말이다.


어느 날엔가 말을 시작한 아이가 "엄마"하고 다정하게 부를 때, 우는 시늉만 해도 따라 울 때, 속상해 보이면 불쑥 다가와 안아줄 때, 안아달라는 아이를 안았더니 나보다 더 꽉 안을 때, 어설프게 다가와 뽀뽀할 때, 오랫동안 눈 맞춤을 할 때 그리고 나의 등을 말없이 토닥여 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이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 그 누구보다 때로는 내가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보다 더 커다란 마음을 주고 있다는 것을.


사실은 언제나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님일 것이다. 부모님은 38년 동안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시니, 몹시도 사랑해 주시니. '부모님 외에는' 또는 '부모님 다음으로'라고 해야겠지.


부모만큼 사랑해 줄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남편은 나를 사랑하는 자리에 있지만 남편에게 부모만큼의 사랑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왜 더 사랑하지 않는 거냐고 부모처럼 모든 것을 품고, 모든 면을 이해하고, 모든 태도를 사랑스럽게 봐주지 않느냐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랑의 양의 문제이기도 할 테지만 사랑의 방향과 형태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그러하다. 나 역시도 남편의 부모만큼 남편을 사랑할 수는 없는 듯이 부모와 같은 양의 같은 모양의 사랑은 누구도 줄 수 없다.


'부모'는 모든 면에서 '넘을 수 없는 산' 같은 것이기에, ‘초월할 수 없는 시간’ 같은 것이기에.

그러한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은 내게 딸이 생기고부터였다. 그리고 그 딸은 '부모님 다음'으로 조건 없는 사랑을 내게 주었다.


생의 마지막까지 엄마인 내가 더 많이 사랑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아이는 아이 나름의 사랑을 소복하게 쌓아 올려 엄마에게 보내고 있다. 그 사랑이 아이에겐 '생존'의 문제이든, '신뢰'의 영역이든, 그 무엇보다 '순수'한 의미의 사랑이든 그게 어떤 빛깔이든 엄마를 사랑한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함께 하기를 원하며, 엄마의 미소에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엄마가 아이를 가장 사랑할 때의 눈빛을 아이는 매 순간 보내주고 있다. 고되고 지친 하루의 무게에 짓눌려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에도 아이는 사랑스럽게 가장 애틋하게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유수처럼 흘러 아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시간이 오면, 친구를 더 사랑한다며 뒷모습을 더 많이 보여 줄 날도 오겠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소홀히 대할 날도 올 것이다. 나의 전화도 귀찮아하면서 말이다. 세상 가장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자신의 아이에게 푹 빠져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야"를 외치는 날이 올지 모를 일이다. 지금의 나처럼.


그래도 지금만은 오로지 엄마 바라기이자 엄마의 사랑을 세상의 가장 귀한 것인 줄 아는 아이.


오직 나의 사랑으로 나의 마음만으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육아는 이전과 달라졌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일과가 하루에 달성해야 하는 체크리스트처럼 여겨지던 날은 이제 없다.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은 사랑받는 만큼 행복해지기 마련이다. 아이의 짜증에도 웃을 수 있게 된 건, 아이의 눈물에 "왜 자꾸 울어"가 아닌 "많이 섭섭했구나 이리 와 안아줄게"라고 말하게 되는 건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알 수 없는 행동에 "그만해 엄마가 하지 말랬잖아"가 아닌 "그게 재밌어? "라고 묻게 된 것은 마음그릇에 사랑이 찰랑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를 사랑함으로 아이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여유를 가지고, 우아하게 그리고 어른답게 아이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아이가 나를 길들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아이가 우리를 사랑의 방향으로 걷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육아’라는 이름의 고되고 수고로운 시간들의 위안은 맥주 한잔이 아닌, 책 한 권이 아닌, 오직 아이의 사랑이다.

이제 나는, 아이를 향한 사랑에 대한 보답을 먼 훗날 그 언젠가가 아닌 지금 오늘 매일 풍요롭게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 마음으로 인해 하루하루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의 눈빛을 보며 깨닫는다. 그 눈이 오롯이 나를 향하고 있음이 그 마음이 온전히 나를 담고 있음이 나를 더없이 충만한 사람으로 빚는다.

모든 아이는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엄마가 화를 내고 우는 순간에도, 아이는 엄마를 사랑해서 애틋하고, 사랑해서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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